[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스포티즘

입력 2017-02-21 17:32 수정 2017-02-21 17:42

새해 결심 중에는 정말 새로운 시도도 있지만, 지난해에서 이월된 재고품들도 있다. 내 경우엔 그중 하나가 ‘규칙적인 운동’이었는데 아직도 어렵다. 계획대로라면 저녁 무렵 집에 오기 전에 요가를 해야 했건만, 꾀가 나니 요가복을 가방에서 꺼내지도 못한 채 그냥 집으로 오곤 했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는 집에서부터 요가복을 입고 나갔다. 위로 옷 몇 겹을 더 입긴 했지만, 요가복을 입고 있으면 오늘 내가 요가를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좀 지난 후, 내가 요가보다 요가복에 익숙해져, 요가복의 본래 의미를 무척 확장하게 된 게 함정이긴 했지만.

친구와 만나 저녁을 먹을 때도 나는 스웨터 속에 요가복을 입고 있었는데, 당연히 이후에 요가를 하러 갈 거라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친구는 저번에도 내가 요가복을 입고 나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리고 “요가복을 입은 걸로 그날의 요가를 한 거나 마찬가지”라 우겼다는 사실도. 나는 자백했다. 요가복을 입고 그냥 움직이기만 해도 어떤 운동효과를 느끼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만두전골을 떠먹는 순간에도 복부가 편안하다니까, 옷이 잘 잡아주니까!” 추운 날이었다. 친구는 집으로 바로 갈 거라면, 차로 나를 집 앞에 내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라인을 살리는 탄탄한 옷의 긴장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걸을 때마다 옷이 근육을 잘 잡아주고 있음을 확인한 후, 친구의 차에 올라탔다. 요가복은 조수석의 온열시트와 닿았을 때 빠르게 열을 온몸으로 전달했다.

사람들을 둘로 나눠 각각 평상복과 의사 가운을 입히고 같은 업무를 보게 했더니, 의사 가운 쪽이 훨씬 집중력이 좋았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조명이나 음악, 향기만큼 복식도 무의식에 영향을 끼친다. 나는 지금 요가복을 입고 요가를 하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심지어 글을 쓸 때도 요가복이 효과적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자세와 호흡이 편안하고, 땀 흡수가 잘 된다. 겨울에 웬 땀이냐고? 마음만은 땀나게 쓰고 있다고나 할까.

글=윤고은(소설가),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