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군 대양면 양산길.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논두렁 옆 농로 한편엔 빨강 노랑 파랑 빛깔 지붕이 신호등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파란색은 21년째 이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송외동(60) 대양중앙교회 목사의 사택, 노란색은 예배당, 빨간색은 송 목사가 운영하고 있는 동네 유일의 공부방입니다.
공부방의 주 고객은 한부모·다문화 가정 아이들입니다. 2004년 마을 어귀에서 외톨이처럼 방황하는 아이들을 데려다 같이 떡볶이도 해먹고 라면도 끓여 먹으며 공부를 가르쳐주다 시작한 곳입니다. 지금은 아동센터란 이름으로 정부 지원까지 받으며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처녀들과 농촌 노총각들이 결혼하는 사례가 급증하던 시기였지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한글을 제대로 배우질 못했어요. 숙제도 못 해가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이 많아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져 온 알림장을 보고 부모님 대신 준비물을 챙기기도 했지요. 제 아이가 3명인데 그럴 때면 도대체 몇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웃음)”
공부방의 운영시간은 하교 시간인 오후 2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요즘 같은 방학기간엔 오전 10시 즈음부터 공부방이 북적거립니다. 송 목사는 “19명 중 80%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라 한 번 모이면 베트남어 필리핀어 태국어 등이 뒤섞여 오히려 내가 외국인이 된 느낌”이라며 웃었습니다. 6년 전 정부 지원이 이뤄지기 전만해도 송 목사는 사모와 함께 어렵게 구한 학습지 한 권을 복사하거나 손으로 직접 베껴 써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교육하고 틈날 때마다 복음을 전하는 게 송 목사 부부에겐 행복이었습니다.
대양중앙교회의 주일예배는 작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10명 남짓한 아이들과 함께 주일학교 예배로 문을 열고 이어 장년예배를 드립니다. 송 목사와 사모, 90을 넘긴 성도 한 명뿐인 단출한 예배입니다. 요양원에 입원한 80대 성도 두 명을 위해선 송 목사가 직접 찾아가 예배를 드립니다. 송 목사는 “신학공부하면서 서원했던 것이 복음의 불모지에서 부모님 모시듯 사역하는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길로 삶을 인도하신 것 같다”며 “마을의 다른 어르신들에게 하루 속히 천국 복음이 전해지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합천 하면 해인사를 떠올릴 만큼 불교문화와 우상숭배가 강한 지역이지요. 이곳에서 꽃피울 복음을 기대하며 기도로 하루하루를 시작합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농어촌교회 24시] 베트남·필리핀·태국어 뒤섞인 공부방… 한부모·다문화 아이들의 ‘따뜻한 안방’
입력 2017-02-22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