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는 썩었다”고 분노하는 우리에게 유쾌한 위로가 되어주는 드라마가 있다. 통쾌함을 즐기며 깔깔거리는 사이 슬며시 뭉클함이 스며든다. “돈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고, 사원이에요.” 직장에서 도구 취급을 받으며 매일을 버텨내는 회사원들을 가만히 다독여준다. KBS 2TV 수목드라마 ‘김과장’ 얘기다.
20부작으로 예정된 ‘김과장’은 지난 16일 방송된 8회에서 최고시청률 17.6%를 찍으며 연일 화제몰이 중이다. 초반에는 한류스타 이영애의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은 SBS ‘사임당, 빛의 일기’에 다소 뒤처지는 듯했다. 그러나 눈부신 반전을 일궈냈다. 4회를 기점으로 전세를 뒤집고 당당히 수목극 왕좌를 거머쥐었다.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의 호연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횡령 전문 경리과장 김성룡(남궁민)이 대기업에 들어가서 얼떨결에 의인(義人)이 됐다가 진짜 정의의 화신으로 거듭난다는 게 ‘김과장’의 줄거리다. 주인공 김과장은 천재적인 회계 능력을 가졌음에도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소시민. 천장이 무너질 만큼 허름한 월세방에 살지만 불합리만큼은 참지 못한다. 어디서든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을 한다.
남궁민은 그런 캐릭터의 맛을 200% 살려냈다. 망가짐을 불사하고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를 펼쳐 보인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의 표정은 스토리의 평이함마저 지워버릴 정도로 다채롭다. 만화적으로 그려진 히어로 캐릭터임에도 김과장은 남궁민을 통해 현실감을 입었다. 지난해 SBS ‘리멤버-아들의 전쟁’, SBS ‘미녀 공심이’ 등에서 물오른 연기력을 선보인 그가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남궁민은 “전작과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연기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가볍게 연기할 수 있는 코미디 장르인데도 스트레스가 크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배우들이 정말 열심히 촬영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드라마가 나올 거라는 자신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드라마가 특히 공감을 사는 이유는 우리네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낙하산 인사, 직장 내 성희롱 등 회사생활 중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일들을 무겁지 않게 다룬다. 핵심은 그 부조리를 시원하게 꼬집어낸다는 것이다. ‘사이다’처럼 쏘아붙이는 대사는 보는 이의 속을 뻥 뚫어준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김과장’은 여타 드라마처럼 사건을 질질 끌고 가다 마지막 회에 가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슈퍼맨 같은 인물을 통해 계속해서 통쾌함을 안겨준다”며 “요소요소에 배치된 여러 장치들이 세태에 맞물려 속 시원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고 분석했다.
연출을 맡은 이재훈 PD는 “최근 몇 번의 청문회에서 국민의 세금을 ‘삥땅’치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보며 분노를 느끼신 많은 분들께 통쾌함을 드리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의도대로 ‘김과장’은 시국에 지친 이들에게 시의적절한 위로가 된 것으로 보인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유쾌, 상쾌, 통쾌!… 우리가 ‘김과장’에 환호하는 이유
입력 2017-02-22 00:01 수정 2017-02-22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