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스페셜/청춘리포트] 원룸 숲 속 ‘보증금 쟁탈戰’

입력 2017-02-22 05:02
서울의 한 대학가 게시판에 원룸 세입자나 하숙생을 구한다는 전단이 빼곡히 붙어 있다. 매년 2, 3월이면 대학가에서는 집을 옮기려는 세입자 학생과 새 세입자를 구하려는 건물주 사이에 보증금을 둘러싼 실랑이가 벌어진다.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는 권리는 법에 보장돼 있지만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미루려는 관행 때문에 학생들만 골탕을 먹는 경우가 많다. 뉴시스

새학기가 시작되는 2∼3월이면 대학가에서는 집주인과 20대 청년 간에 전쟁이 벌어진다. 보증금을 둘러싼 분쟁이다. 청년들은 “계약이 끝났으니 보증금을 달라”고 나서지만 집주인은 다음 세입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 한다. 세상 물정 모른다는 핀잔에 학생들은 발만 동동 구른다.

지난해 2월부터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원룸에 1년간 거주한 현모(24·여)씨는 계약 기간 만료를 2주 남기고서도 보증금 때문에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현씨는 계약이 끝나기 한 달 전부터 집을 나가겠다고 말해 왔다. 집주인 박모(52)씨는 “다른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우겼다. 당장 이사를 가야 하는 현씨에게 보증금 700만원을 나중에 받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이 집에 더 머물면서 낼 공과금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씨는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달라고 거듭 요구했지만 집주인은 도리어 “임대인들 사이에서는 법보다 우선시되는 관행이라는 게 있다”며 “20, 30대들은 아직 뭘 몰라서 그렇다”고 면박을 줬다. 현씨는 집주인의 기세에 위축돼 결국 보증금 없이 갈 수 있는 집을 구해야 했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황모(26)씨는 동작구의 한 원룸에 1년간 살았다. 그도 계약이 끝나갈 때 갑자기 집주인에게서 “다음 임차인을 구하지 못했으니 보증금을 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그는 넉 달이나 지나서야 이사를 갈 수 있었다. 황씨는 “처음에는 집주인이 적반하장으로 억지를 쓰면서 소리를 치다가 내가 학생이 아니라 회사원이고, 생각하시는 것보다 나이가 많다고 말하자 누그러졌다”며 “집주인이 학생은 만만하니 무시하는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건물주가 말하는 관행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손모(25·여)씨는 누가 대학가에서 방을 구한다면 뜯어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는 신입생이었던 5년 전 관악구에서 1년간 자취를 했다. 그가 살던 원룸의 건물주는 갖은 핑계를 붙여가며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뤘다. 결국 손씨는 보증금 500만원을 떼였다. 눈 뜨고 코 베인 격이었다. 손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등기부등본이라도 떼어서 집이 저당잡힌 건 아닌지 살펴봐야 했다”고 말했다.

피해를 입은 학생들은 “어리다고 무시하면서 오히려 당당하게 못 돌려준다고 나오는 집주인들에게 주눅이 들어버렸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에는 대학가에 원룸이 공급 과잉 상태가 되면서 집주인들의 횡포가 더 심해지고 있다. 관악구의 한 원룸 주인은 “공실 기간이 3∼5개월씩 돼 버리면 힘들다”며 “공실 기간이 길어지면 집주인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임차인도 배려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변 부동산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신림동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법대로만 할 수는 없고 서로 배려해야 한다”고 했다.

서로 배려해야 한다지만 세입자인 청년이 배려받는 것은 별로 없다. 셰어하우스 벤처기업 코티에이블의 안혜린 대표는 “법은 당연히 지켜야 하지만 관행이나 떼법이 너무 우선시되고 있다”며 “나 역시 1000만원을 집주인에게 받지 못한 적이 있는데 법대 출신인데도 집주인이 배째라고 나오는 통에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 자취방 보증금은 상대적으로 금액이 적기 때문에 집주인이 사소하게 여기고 법을 잘 지키지 않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에도 보증금 문제로 상담을 받으려는 청년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20대는 관련 경험·정보가 없다 보니 세입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침해받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 대안으로 임차권등기명령(보증금 보장)을 신청하고 이사를 가거나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보증금 대출 제도 등도 있지만 이런 정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성균관대에서는 법학전문대학원생 5명이 뜻을 모아 법률지원 공익단체 ‘우리들의 누울자리’를 만들었다. 지난해 7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 단체는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홍보활동과 무료법률상담, 피해사례 조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청년을 대상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이나 주거 문제 교육을 체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며 “상습적으로 보증금을 제때 주지 않는 집주인을 신고하도록 해 더 이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