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20주기’ 조용한 시진핑의 중국

입력 2017-02-21 05:00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리는 덩샤오핑(사진)의 사망 20주기가 조용히 지나갔다. 덩샤오핑 문집을 발간하고 학술토론회 등이 열렸던 2007년 10주기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덩샤오핑은 1997년 2월 19일 오후 9시쯤 베이징에 있는 인민해방군 소속 301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사망 20주기인 19일 중국의 대표적인 관영 매체들인 신화통신과 CCTV,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인민일보의 웹사이트 인민망은 덩샤오핑의 고향인 쓰촨성 광안에서 열린 추모 행사 소식만 전했다. 군 기관지 해방군보와 중국청년보 등도 홈페이지에 덩샤오핑의 역사 기록이나 어록 등을 보도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 베이징의 신경보, 환구시보와 영문판 글로벌타임스 정도만이 칼럼과 기획기사를 선보였다. 신경보는 “덩샤오핑의 개혁에 관한 말들은 덩샤오핑 유산의 핵심”이라며 “덩샤오핑의 유산을 이어받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그를 추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적었다. 글로벌타임스는 “중국과 미국 관계에 대한 덩샤오핑의 실용적인 접근은 오늘날에도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중국에서는 대체로 고위 지도자들의 사망보다는 탄생 기념일을 중시한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덩샤오핑의 사망 20주기가 조용히 지나간 것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신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통치 철학의 ‘불일치’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치평론가 장리판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덩샤오핑 시대의 개혁·개방은 시 주석의 집정 이념이 아니다”면서 “덩샤오핑 20주기를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불협화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교 정책만 놓고 볼 때 덩샤오핑 외교 정책의 핵심은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특히 미국과는 대립을 피하는 신중하고 다소 방어적인 대외 정책이다. 덩샤오핑은 현재 남중국해 분쟁에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 대해서도 ‘현명한 후세들’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꿈’을 앞세운 시진핑 체제 이후 중국은 도광양회에서 벗어나 힘의 외교를 추구하며 곳곳에서 ‘근육’ 자랑을 하고 있다. 미국과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신형 대국관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국제사회에서 걸맞은 영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의 암초에서는 인공섬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군사력을 급속히 증강시키며 힘을 과시한다.

상하이정법학원 천다오인 교수는 “덩샤오핑의 대대적인 추모 열기는 권력 공고화 작업을 하는 시 주석의 이해와 맞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전임 지도자 띄우기가 1인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시진핑 시대를 오히려 퇴색시킬 수 있다는 이유다.

시 주석이 척결을 외치는 부패의 뿌리가 공무원과 재계의 유착을 낳았던 개혁·개방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부담되는 측면이 있다. 천 교수는 “시 주석이 개혁·개방의 유산을 버리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철학에 맞게 수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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