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선공약 너도나도 “미투”… 정책대결 실종
입력 2017-02-20 18:31 수정 2017-02-20 21:19
야권 주도의 대선 흐름 속에 후보들이 비슷비슷한 개혁과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미투(Me too)’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여권 주자들마저 재벌개혁, 근로시간 단축 등 야권의 전통적 이슈를 내걸고 ‘좌클릭’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드러난 정경유착 해소, 경제난 해결에 여야가 힘을 합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정책 경쟁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재벌·검찰개혁 등 주요 개혁과제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주요 대기업들이 거액의 자금을 출연하는 대가로 청와대와 ‘부당거래’를 한 의혹이 드러나면서 재벌개혁은 최우선과제로 떠올랐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삼성 현대차 LG SK 등 4대 그룹을 중심으로 한 재벌 지배구조 개혁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도 재벌 총수 일가에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는 내용을 공약에 포함시켰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과 독립성을 강화하겠다고 했고, 여권 주자인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재벌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금지 방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야권 주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법정 근로시간 준수 등 노동권 강화 공약에도 뜻을 같이하고 있다. 유 의원은 ‘칼퇴근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는 2012년 대선 당시 무상급식 도입을 놓고 여야가 치열하게 이념 대결을 펼쳤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시엔 부유층에도 무상복지가 필요한지를 놓고 ‘보편적 복지’ 진영과 ‘선별적 복지’ 진영 간 논쟁이 불붙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공약 간 차이점이나 이념에 기반을 둔 노선 대결을 발견하기 어렵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20일 “공통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에 대한 합의가 자연스럽게 후보자들 공약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나 정권교체 여부가 정책 이슈를 압도하는 상황이어서 공약은 후보자 선택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체감도가 높은 이슈 해결을 통해 중도층을 공략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된 것도 ‘미투 현상’의 원인으로 꼽힌다. 야권 내 집안싸움이 치열해진 가운데 전통적 지지층 이외 확장력이 주요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에 대비한 보육 공약이나 청년 일자리, 4차 산업혁명 이슈가 대표적이다. 문 전 대표와 안 지사, 이 시장 모두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현행 11% 수준에서 최대 50%까지 끌어올리는 보육 공약을 발표했다. 육아휴직 강화 방안도 공통적으로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비슷한 공약 발표가 부실한 정책 검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미투 현상’이 정책적 공감대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은 있다”면서도 “자칫 정책 검증을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에 후보자들의 정책 실현 의지를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