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의 문명고등학교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 역사 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됐다. 이 학교도 학내 반발 때문에 연구학교 신청을 철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는 연구학교를 통한 국정 교과서 보급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자 보조교재 보급 전략으로 선회했다. 역사 교사들의 거부감이 강해 실제 교실에서 쓰일지는 미지수다. 교육부가 무리하게 역사 교교서 국정화를 추진해 교육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수십억원의 예산만 낭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교육부는 20일 국정 역사교과서를 새 학기부터 사용할 역사교육 연구학교에 영주 경북항공고, 구미 오상고, 문명고 등 경북지역 3개 학교가 신청했으나 1곳만 지정됐다고 발표했다. 오상고는 학내 반발 등으로 신청을 철회했고, 경북항공고는 학교 운영위원회를 거치지 않아 교육청 심의에서 탈락했다.
다음달부터 국정 교과서로 역사를 공부하게 된 문명고에선 학내 갈등이 불거졌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부 동문들도 “부끄러운 일”이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문명고 측은 23일 연구학교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시·도교육감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에 화살을 돌렸다. 교육부는 “서울 광주 강원 교육청은 연구학교 신청 마감일까지 학교로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 일부 교육청은 국정 교과서 반대 입장을 공문과 함께 전달, 연구학교 신청을 원천 봉쇄했다”며 연구학교 신청이 저조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교육부는 “(연구학교 신청 과정에서) 수업 방해 행위, 학교 직원들에 대한 명예 훼손, 협박 등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수사 의뢰 등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대신 보조교재로 국정 교과서를 보급할 방침이다. ‘학급별 읽기 자료’ ‘도서관 비치’ ‘역사동아리 및 방과후학교 활용’ ‘교과서 재구성을 통한 교수-학습 참고 자료’ ‘역사수업 보조교재 활동’ 등을 예로 들면서 국정 역사 교과서를 교육 현장에서 사용할 방안을 제시했다. 다음달 3일까지 일선 학교를 상대로 보조교재 신청을 받아 무료로 배포키로 했다.
또 내년 배포를 목표로 개발 절차에 들어간 검정 교과서를 ‘제2 국정 교과서’로 유도하려는 의도도 내비쳤다. 교육부는 “새 검정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는 검정 심사를 철저히 하여 학생들이 올바른 국가관과 미래지향적인 역사 인식을 확립토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검정 교과서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집필기준은 국정 교과서의 편찬기준을 준용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조기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면 집필기준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보조교재 활용 여부와 검정 교과서 개발 등 곳곳이 지뢰밭이어서 역사 교육이 정상화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국정화를 반대해온 단체 모임인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교과서 싸움은 자라나는 세대를 촛불 시민으로 만들 것인가, 태극기 집회 참가자로 만들 것인가라는 미래를 쟁취하는 싸움”이라며 “국·검정 혼용, 연구학교, 보조교재 활용 등 일련의 꼼수로 단 한권이라도 학교에 보급해 친일-독재 미화사관을 공식 역사관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0곳’ 위기
입력 2017-02-2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