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 환노위의 삼성전자 10년치 자료 요구는 횡포다

입력 2017-02-20 17:38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피해 청문회를 앞두고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 등 핵심 자료 10년치를 요구했다. 의원들은 반도체 생산 공정이 백혈병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라고 주장했다. 청문회는 법에 보장된 국회의 정당한 의정활동이지만 요청 자료가 과도하게 방대하고 또한 내용을 보면 매우 우려스럽다. 일부 자료는 백혈병 발병 원인을 밝히는데 관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갑질’로 비칠 수 있다.

요청 자료에는 생산 도면은 물론이고 사업장별 공정도와 공정별 화학물질 목록 및 수량, 10년간 고용노동부와 주고받은 공문 일체, 삼성전자 1∼4차 하청업체 전체 목록 등이 포함돼 있다. 생산 노하우는 물론 마케팅 전략과 시장 수요에 이어 가격까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다. 기업 입장에선 1급 기밀사항으로, 유출될 경우 기업은 물론 국가적 손실이 불가피하다.

최근 세계 반도체 시장은 중국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를 핵심 산업으로 지정하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국산화율도 크게 높였다. 또 반도체 고급 인력을 스카우트하며 한국 따라잡기에 나선 지 오래다. 중국의 추격세가 만만치 않아 기술적 우위를 계속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산업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핵심 분야가 반도체다.

청문회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는 것은 의원들의 고유 권한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지나치게 광범위하면 오해를 살 수 있다.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거부하기 어렵다. 따라서 청문회 목적에 부합하는 수준에서 선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이 금력으로 정치권력에 접근하는 것뿐 아니라 정치가 권력을 앞세워 기업들에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도 국가적 손실임을 지금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