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김현 변협회장 당선자 “사시 역사적 소명 다해… 로스쿨 비리 엄정 감시할 것”

입력 2017-02-21 18:27 수정 2017-02-22 10:23
오는 27일 제49대 대한변호사협회장에 취임하는 김현 당선자는 임기 내 반드시 해야 할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새로운 변협, 강력한 변협’을 표방한 그는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대한민국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서영희 기자
두 번의 도전 끝에 지난달 16일 제49대 대한변호사협회장에 당선된 김현(61·사법연수원 17기) 변호사. 27일부터 2년 임기를 시작하는 그는 요즘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다음 달 13일에는 각계 외부 인사를 초청한 가운데 변협 사상 처음으로 공식 취임식도 갖는다. 사명감과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그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행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새로운 변협, 강력한 변협'을 천명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변호사는 2만2300여명에 이른다. 해마다 1900여명씩 신규 변호사가 배출되는 것을 감안하면 변호사 3만명 시대를 대비하는 중책이 그의 어깨에 달려 있다. 한국 현대 문단에 큰 업적을 남긴 고(故) 문곡(文谷) 김규동 시인의 차남이기도 한 그를 지난 9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중 "시대를 배반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래서일까. 문곡 선생의 발자취가 사무실 곳곳에 배어 있었다. 아버지의 대표작 '당부'를 가장 좋아한다며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보면 보이리 길이'를 읊기도 했다.

-27일 정식 취임하면 어떤 점에 중점을 두려고 하는지.

“변호사업계가 매우 어렵다. 변호사의 일자리를 새로 창출하고 변호사의 신규 배출 숫자를 줄이는 데 노력하겠다. 우리나라의 인구와 경제규모를 고려할 때 지난해 배출된 1937명의 변호사는 너무 많다. 이번 회장 선거에서 구성원들이 높은 득표율로 저를 당선시켜 준 것도 일자리를 창출하고 변호사 숫자를 줄여서 변호사업계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대법관 구성 다양화 등 국가 전체적인 관점에서 의미 있고 필요한 일들도 관심을 갖고 추진하려고 한다. 약자를 보듬고 인권을 옹호하여 정의를 수호하는 변협의 존재의의를 잊지 않고,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강력한 변협을 만들겠다.”

-법조비리와 전관예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근절 방안이 있는가.

“법조비리에 연루된 변호사에 대해서는 징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비리가 있는 판사와 검사는 변호사 등록을 받아주지 않는 방향으로 가겠다. 최근 변협은 법조비리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홍만표 변호사와 최유정 변호사에 대해 제명을 의결했다. 앞으로도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연루된 변호사에 대해서는 영구제명을 포함해 엄정한 징계를 하겠다. 전관예우에 따른 법조비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좀 더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퇴직 후 1년 동안 전관 변호사가 최종 근무지에서 개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것을 3년으로 연장할 예정이다. 그리고 법조윤리협의회에 조사권을 주어 보다 철저히 전관 변호사의 수임내역을 조사하겠다. 전관 변호사가 지나치게 고액의 수임료를 받는 것은 국민의 법감정에도 맞지 않고 법조비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올해 이상훈 대법관을 시작으로 잇따라 대법관들이 임기만료로 퇴임한다. 대법관 다양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복안이 있는지.

“대법관 구성에 있어 여성과 학자, 공무원, 외교관 등이 다양하게 분포되고 순수 재야 변호사 출신이 포함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야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가 대법원 판결에 반영될 수 있다. 대법관 다양화를 위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과 운영방식을 변경할 필요성이 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변협과 시민단체, 언론의 의견이 적극 반영돼야 한다. 예컨대 변협과 시민단체 등에서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개진한 대법관 후보에 대해서는 대법관 지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09년부터 법관평가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일관되게 나쁜 평가를 받은 법관은 대법관 후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변호사단체의 법관평가 결과를 반드시 법관인사에 반영하도록 하는 입법도 추진되어야 한다.”

-검찰 개혁과 중립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검찰이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검찰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 개혁할 부분이 많다고 본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인사권에 대한 통제다. 미국처럼 지방검찰청과 고등검찰청의 검사장을 소속 검사나 변호사가 투표로 뽑는 직선제 방안을 도입해 선출된 검사장이 소속 검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더 나아가 검찰총장의 직선제도 검토되어야 한다. 직선제를 도입하면 중앙권력이 검찰에게 인사권을 근거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과 검찰이 중앙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검찰총장도 반드시 검사 중에서 선출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형사사건 경험이 많은 변호사로서 능력을 갖춘 분이라면 오히려 현행 검찰권 행사의 문제점을 잘 이해하고 검찰 개혁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검사, 판사 평가 제도를 확대 시행할 예정인가.

“판사와 검사에 대한 변호사들의 평가를 계속 축적해 모든 결과를 법원행정처와 법무부에 인사 참고자료로 보내고, 낮은 평가를 받은 하위자들에 대해서는 협회장 명의로 공문을 보내 경고를 할 예정이다. 또 평가 결과를 인사에 반영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다. 판사, 검사를 포함한 모든 공직과 전문직 종사자는 끊임없이 외부의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야 더욱 개선되고 가일층 분발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변호사 사회 내부 갈등 요소로 번진 사법시험 폐지 논란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

“사시폐지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사시와 사법연수원은 훌륭한 제도이기는 하지만 이미 그 역사적 소명을 다하였다. 논란이 있지만 사회적 합의에 의해 로스쿨 제도를 선택했으므로 사시를 더 이상 유지할 명분과 실익이 없다. 어려운 형편의 로스쿨 지망자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장학금 확충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로스쿨 제도의 정상적인 운영과 발전, 법조개혁, 법조화합을 위해서도 사법시험은 폐지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로스쿨 입학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입학비리가 있는 로스쿨에 대해서는 강한 페널티를 주어야 한다. 변협 차원에서 로스쿨의 입학비리가 적발될 경우 교육부에 요청해 제재가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다. 변협 내 로스쿨 평가위원회 활동을 강화하여 로스쿨 입학에 비리가 있는지를 엄정하게 감시하겠다. 로스쿨의 설치인가권과 관리감독권이 교육부에서 변협으로 이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스쿨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를 양성하는 특수한 기관이므로 변협의 소관으로 두는 것이 맞는다. 미국의 경우에도 미국변호사협회(ABA)가 로스쿨의 설치인가권과 관리감독권을 가지고 있다. 변협이 아니라면 적어도 법무부가 관리감독권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 모임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 입법화도 추진하고 있는데.

“최근 옥시 가습기 사건을 통해 실손해액만 배상하면 되는 현재의 손해배상제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기업들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제2, 제3의 옥시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면 기업 스스로가 더욱 고도의 주의를 기울여 품질유지를 하게 될 것이고, 이는 산업 전체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상고법원과 원로법관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대법원에 연간 4만3000여건의 사건이 적체돼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 상고심 본래의 기능인 법리의 통일적 해석과 기준 마련이라는 기능이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해결 방안으로 상고법원제, 상고허가제, 대법관 증원이 있으나 대법관 증원은 대증요법에 불과하고 상고허가제는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상고법원제가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고 본다. 상고법원제를 도입하면 국민으로서는 서면으로 다투는 대법원과 달리 실질적인 변론을 거쳐 권리의무관계를 다툴 수 있어 훨씬 이익이다. 법원으로서도 사건적체를 해결할 수 있게 되고, 변호사들 역시 변론의 기회가 넓어지는 장점이 있다. 원로법관제도 여러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중요 상고사건 기록 검토를 원로법관이 해 준다면 대법관의 업무가 경감되고 대법원의 신뢰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 경륜 있는 분들에 의한 재판이 계속 이루어질 수도 있고 전관예우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순탄치만은 않은 청년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청년들에게 한 말씀을 해준다면.

“제 삶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1977년 서울대 법대 2학년 때 군사독재 반대 시위를 하다 유기정학을 받은 전력 때문에 행정고시와 사법시험 모두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미국유학을 떠나야 했다. 당시의 좌절감과 허탈감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그러다 은사인 송상현 교수님의 보증으로 간신히 합격하여 변호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여러 번 좌절과 시련을 겪다보니 웬만한 위기와 아픔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강인함과 배짱이 생겼다. 많은 젊은이들이 당장의 실패에 너무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실패를 딛고 성취를 하였을 때 성취감은 더욱 크다. 실패는 온전히 실패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작은 성공의 씨앗이 있다. 이러한 씨앗을 잘 살리면 반드시 실패를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 심판과 특검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소회는.

“헌재의 탄핵 절차가 하루빨리 마무리돼 대한민국이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저런 이유 등으로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탄핵 심판에 임하고 특검 수사에도 협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성원 모두 헌재 심판 결정에 승복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 민주 절차에 따르는 것이다. 법치주의 정착을 위해서도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 특검은 살신성인의 자세로 명명백백하고도 차질 없이 엄정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국정농단 사태를 교훈 삼아 대한민국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 확신한다.”



■ 김현 당선자는

△1956년 출생 △75년 경복고 졸업 △80년 서울대 법대 졸업 △83년 25회 사법시험 합격 △84년 미국 코넬대 법학 석사 △90년 미국 워싱턴대 해상법 박사 △1999년∼ 법무법인 세창 대표 △2007년 대한변협 사무총장 △2009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2012년 탈북자를 걱정하는 변호사들 대표 △2013년∼ 물망초 국군포로송환위원회 위원장 △2017년∼ 대한변협 회장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