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100억원대 지원 계획, 대폭 늘어난 해외전지훈련, 체계적인 훈련팀 편성.’
평창동계올림픽에 대비한 대한스키협회의 꾸준한 지원이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열매를 맺고 있다. 한국 동계스포츠의 불모지였던 설상 종목에서 금메달이 쏟아진 것이다.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스노보드의 ‘희망’ 이상호(22·한국체대)는 2관왕에 올랐다. 크로스컨트리의 ‘간판스타’ 김마그너스(19·협성르네상스)도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 동계아시안게임 역사상 두 종목에서 금메달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창동계올림픽 메달 획득에도 청신호가 될 전망이다.
이상호는 20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의 데이네 스키장에서 열린 대회 스노보드 알파인 남자 회전에서 1·2차 시기 합계 1분16초09를 기록해 우승했다. 전날 열린 알파인 남자 대회전에서 1·2차 시기 합계 1분35초76으로 한국의 첫 금메달을 따낸 이상호는 한국 최초로 설상 종목 동계아시안게임 2관왕에 올랐다.
이상호는 어릴 때부터 썰매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의 한 고랭지 배추밭으로 갔다. 배추밭은 눈썰매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스노보드를 탔다. 배추밭에서 스노보드를 배워 ‘배추 보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상호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설상 종목의 자존심을 지킬 기대주로 떠올랐다.
김마그너스는 20일 삿포로의 시라하타야마 오픈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키 남자 크로스컨트리 1.4㎞ 개인 스프린트 클래식 결선에서 3분 11초 40으로 1위를 차지했다.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마그너스는 5년 전 크로스컨트리에 입문한 이후 국내 무대를 휩쓸었으며, 이제 아시아 최강자로 떠올랐다.
김마그너스는 감기몸살 증세로 이달 초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2016-2017 국제스키연맹(FIS) 크로스컨트리 월드컵에 불참했다. 컨디션을 회복한 김마그너스는 삿포로에서 정상에 오른 뒤 “대회 참가 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이 많았는데 금메달을 따내 기쁘다”며 “오늘 우승을 계기로 도약의 전환점을 마련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두 선수의 쾌거는 대한스키협회가 평창동계올림픽에 대비해 설사 종목에 집중 투자를 한 결과다. 이날 열린 스노보드 알파인 회전에서 이상호 외에 김상겸이 동메달을 땄으며 전날 대회전에서는 최보군이 은메달을 따내는 등 상위 5명 가운데 4명이 한국 선수였다. 단순한 특정 개인의 특출함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팀원 실력이 상향평준화 된 것이다.
스키협회 관계자는 2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2014년 11월 대한스키협회장을 맡은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협회에 1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한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며 “선수들은 경제적인 부담감 없이 훈련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제대회에도 선수들을 적극 출전시키고 있다. 이 관계자는 “2015년부터 종목당 해외 전지훈련 일수가 약 30일 늘어난 것이 이번에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스노보드의 경우 과거 1명의 코치가 선수 5∼6명을 가르쳤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헌 감독과 기술 훈련 전문 크리스토프 귀나마드(프랑스) 코치, 물리치료 전문 시모니 프레드리(프랑스) 코치, 장비 전문 이반 도브릴라(크로아티아) 코치 등이 팀으로 움직이며 선수들의 훈련을 돕고 있다. 또 체력 트레이너와 심리 상담 전문가도 대표팀을 지원하고 있다.
이상호는 첫 금메달을 획득한 뒤 “한국인 코치들은 선수들의 성격 등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컨트롤을 잘해 주고 외국인 코치는 경험이나 기술에서 큰 힘을 준다”고 말했다.
김마그너스의 소속사 브리온 컴퍼니의 유현식 매니저는 “김마그너스는 노르웨이에서 장비 전문가 2명과 전담 코치 1명으로 이뤄진 지원팀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기량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마그너스는 21일 크로스컨트리 15㎞ 프리와 23일 10㎞ 클래식, 24일 4×7.5㎞ 계주, 26일 30㎞ 매스스타트에도 출전해 다관왕이 예상된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당초 금메달 4개를 목표로 했던 스키협회는 스노보드 등에서의 선전이 이어지자 6개로 상향 조정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눈밭이 금밭으로… 한국 ‘설상 종목’ 일취월장
입력 2017-02-20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