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고 육체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모두가 감사해 하는 것은 아니다. 토니(가명)와 라파엘(여·가명)은 내게 회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우리 사역의 또 다른 이유를 알려준 사람들이다. A국에서 온 토니는 온몸에서 고름이 터져 나올 때 만났다. 근로 여건이 열악한 공장에서 화학약품을 다뤘던 게 원인으로 추측될 뿐, 병명조차 몰랐다. 뼈만 앙상한 토니의 얼굴 위로 흐르던 눈물과 그 곁에 놓여있던 3개월 된 아들의 사진, 그때 그의 앞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었다.
당시 중환자실에 있던 그는 병원비가 1주일 만에 138만원이 나왔다. 하루 벌어 살아가는 그에겐 도저히 감당 못할 금액이었다. 어린 아기를 돌봐야 하는 부인 대신 매형과 누나가 매일 면회를 온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환자실에서 3인실로 옮겼는데 그의 가족들은 침대 하나씩을 차지한 채 편히 지냈다. 며칠 후 토니의 상태가 한결 나아져 다인실로 옮겨야 했다. 그러자 토니 누나는 동생이 너무 아프니 계속 3인실에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말투가 거슬렸다. 우리가 자신의 동생과 그 가족들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듯했다.
가족들의 행동은 퇴원 이후에도 이어졌다. 매주 얼마씩의 생활비를 주는데도 ‘쌀이 떨어졌다’ ‘기저귀 살 돈이 모자란다’며 계속 돈을 요구했다. 당시 나는 매주 닭고기 요리를 해갔는데 그마저도 맛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내 마음은 복잡했지만 그래도 그가 건강해져 직장을 다닐 때까지는 쉼터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 토니는 다행히 다시 취직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월급을 받았는지 말 한마디 없이 쉼터를 떠났다.
라파엘 역시 그랬다. 그녀는 B국에서 기자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그는 과거와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영양실조로 성한 치아가 없을 정도였다. 성경공부 중에도 늘 우울한 얼굴로 웅크리고 있었고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병원에서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지 않으면 다리가 썩어 들어간다고 했다. 수술비용은 2200만원이나 됐다.
나는 당시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고 당장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내게 라파엘이 찾아와 통증을 호소했다. 다행히 기독 의사들이 그녀를 돌보고 있었고 최소 비용으로 600만원이 든다고 했다. 나는 기도 중에 1년 반 전에 들어놓은 건강보험이 떠올랐다. 자궁암 보험금으로 받은 돈에 딸이 아르바이트비를 해서 마련한 돈을 보태 600만원을 만들어 라파엘의 수술비로 충당했다.
라파엘의 수술은 잘 됐고 그도 감격했다. 허나 오래가지 않았다. 몸이 나아지자 라파엘은 술과 담배를 입에 댔고 몸을 함부로 다뤘다. 당시 나는 토니와 라파엘에 대한 사랑보다 인간적 섭섭함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다 로마서 5장과 에베소서 2장 말씀을 읽던 중에 말씀 하나하나가 다가왔다. 토니와 라파엘은 모두 과거의 내 모습이었다.
영혼을 살리는 일은 동정이나 막연한 사랑으로는 계속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긍휼하심으로만 가능했다. 실망이 클수록 하나님 사랑을 전하는 증인이 될 수 있다. 죄인이던 우리가 이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 1:16)
정리=신상목 기자
[역경의 열매] 김상숙 <9> 실망·회의감 밀려올 땐 주님 주신 긍휼에 의지
입력 2017-02-21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