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훈 특파원 쿠알라룸푸르 르포] “이정철 부인, 체포 당시 30분간 격렬히 저항”

입력 2017-02-20 05:00
김정남 살해 혐의로 지난 17일 밤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된 북한 국적자 이정철이 살던 아파트(왼쪽). 쿠알라룸푸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오른쪽은 현지 신문 뉴스트레이츠타임스 1면에 실린 피습 직후 김정남의 사진. 축 늘어진 상태로 공항 내 치료시설로 옮겨져 있는 모습이다. 신훈 기자, 뉴시스
신훈 특파원
18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 중심가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잘란 쿠차이 라마 지역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페인트가 벗겨진 흔적을 군데군데 찾아볼 수 있었고, 베란다에 내놓은 빨랫감이 바람에 날렸다. 월세 1500링깃(약 39만원)의 흔한 30평형대 아파트였다. 입주자 대다수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 보였다.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북한 국적자 이정철(47)은 전날 밤 이 아파트에서 붙잡혔다. 그는 이곳에서 40대 아내와 17세 아들, 10세 딸과 함께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 당시 이정철과 가족은 격렬히 저항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관문을 박차고 들이닥친 경찰 10여명을 이정철은 물론 아내와 아들이 30분쯤 막아섰다고 한다. 한 주민은 “경찰이 남편에게 수갑을 채우려 하자 부인이 소리를 마구 질렀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남편이 체포된 뒤 실신한 부인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말했다. 이웃들은 이정철이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경찰을 따랐다는 엇갈린 증언을 내놓기도 했다. 체포 당시 경찰은 이정철 이웃들에게 ‘문을 열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체포 현장에서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를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경비원과 입주자들은 체포 소동 때문인 듯 취재진을 경계했다. ‘이정철을 본 적 있느냐’는 물음에 경비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경비초소 유리창 앞에는 쓰러진 김정남의 모습을 1면에 실은 신문이 놓여 있었다. 차를 타고 들어오던 한 남성이 취재진에게 이정철에 대해 무슨 말을 꺼내려 한 순간 조수석에 앉은 여성은 “모른다고 말해”라고 소리쳤다. 또 다른 여성 입주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드나드는 입주자 대부분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었다. 아파트 근처 중식당과 일식당의 손님은 물론 종업원도 대다수가 화교로 보였다. 이정철과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우(64)씨는 “입주자 대부분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다. 한국인은 몇 명 되지 않는다”며 “북한 사람은 한두 가구 사는 것으로 아는데, 그들이 이정철과 그 가족인지는 모르겠다. 실제로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한 입주자는 “이정철은 평범한 가장처럼 보였다. 외부인을 만나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이상한 느낌도 주지 않았다”고 현지 중문 매체 동방일보에 전했다.

이처럼 외국인 근로자 신분증(I-KAD)을 가진 이정철은 가족과 함께 독립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경우 해외 근로자는 물론 외교관도 단신부임이 원칙이다. 이정철이 가족과 거주한 점은 그가 단순한 근로자가 아닌 위장 공작원일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현지 매체 더스타는 정보 당국자를 인용해 말레이시아에서 활동하는 북한 정찰총국 고위급 간부와 요원이 엔지니어, 식당 종업원 등으로 위장 근무한다고 보도했다.

중국보와 성주일보는 북한의 대학에서 과학과 약학을 전공한 이정철이 2000년 졸업 이후 유학을 떠나 인도에서 화학을 전공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이정철이 항암제를 만드는 제약업체 또는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면서 북한대사관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이들 매체는 덧붙였다.

이정철 체포 직후 북한대사관 직원들은 구금된 이정철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불발됐다.









글·사진=신훈 특파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