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대한의학회가 개정 발간한 장애평가기준에 최신 진단 기준이 배제돼 관련 학회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개정된 장애평가기준에 따르면 다수의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이 장애인정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 개정된 장애평가기준은 통증환자들이 법원에서 장애판정을 받는데 기준으로 인용될 가능성이 커 논란이 일고 있다.
◇개정된 장애평가기준 무엇=대한의학회는 지난해 10월 ‘장애평가기준과 활용’ 개정(판2판)을 발간했다. 이는 지난 2011년 9월 발간한 장애평가기준(해설과 사례연구) 출판 이후 두 번째로 개정한 것이다. 의학회는 개정판에 대해 관련 학회로부터 개정 작업에 참여할 위원을 추천받아 함께 연구하고 토론해 근골격계 분야와 뇌신경계 분야에 대한 수정, 보완작업으로 개정판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개정판의 진단기준이 미국의학협회(AMA)의 장애평가기준 5판을 토대로 한 점이다. 미국에서도 5판에 장애인정 기준 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제기돼 최근에 AMA6판이 개정돼 나왔음에도, 의학회가 이를 반영하지 않고 배재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한통증의학회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조대현 대한통증의학회장(대전성모병원 통증의학과 교수)은 “이번 개정안은 예전의 진단기준을 근거로해 작성된 것이다. 최신 진단기준이 있음에도 이를 제외한 것은 환자들을 고려했을 때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증학회 측은 “의학회의 장애평가기준 개정판(2판)은 AMA 5판을 토대로 하고 있고, 최신판인 6판의 내용은 배제됐다.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이라고 밝혔다.
◇개정판인데 예전 기준 적용했다?=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통증장애 범위를 협소하게 했고, 판정기준도 최근 의학계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증장애 범위의 경우 개정판에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만을 장애평가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반면 AMA6판에는 장애평가가 필요한 통증질환을 크게 4가지 범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경우 CRPS를 제외하고 최고 장애율이 3%에 달하는 등 통증장애범위를 보다 넓게 인정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내 개정판은 CRPS에 의한 장애만 인정하고 동일부위의 다른 장애는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진단기준도 문제라는 의견이다. 이는 장애를 입은 환자들이 보험사 등과 법원에서 다툼이 있을 때 장애판정기준이 되는 매우 중요한 근거다. 의학회의 경우 “치료목적으로 사용되는 국제통증연구학회(IASP) 진단기준과 달리 장애평가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징후만을 사용하도록 한다. CRPS에 대한 장애평가는 표와 같이 객관적 진단 기준 11개 중 8개 이상이 동시에 충족돼야만 평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종범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개정판 진단기준은 AMA5판의 CRPS 인정기준 11개 중 8개 이상의 기준을 준용했다. 이 기준은 문제가 많아 미국에서도 신판 개정시 변경된 기준이다. 11개 진단기준 중 8개에 해당하는 CRPS환자는 매우 소수고, 대다수 CRPS 환자가 배제돼 실질적으로 유명무실한 장애진단기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장애율산정에 있어서도 의학회 기준은 11개 중 8개 이상의 객관적 징후를 보이는 경우 상지장애진단기준에 의해 평가하는 것으로 서술돼 있다. 반면 미국 AMA6판에는 CRPS가 진단기준을 충족시키는지 확인하고, 객관징후 점수를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된 기준이 오히려 환자들 울린다?=3년여의 개정 작업에도 관련 학회와 환자단체 등은 오히려 장애등급 판정을 더 어렵게 해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 환우회도 이번 개정안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터 모스코비츠 미국 CRPS환우회 이사장(전 조지워싱턴대학 정형외과 교수)은 쿠키뉴스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개정된 지침은 실행 불가능하며 심각하게 불공정하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를 피터 이사장은 개정판에 서술된 정신과 진단은 (미국에서도) 적절하게 사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CRPS 환자가 장애나 통증이 있음에도 통증이 더 악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윤리적으로 올바른 것이 아니다”며 “CRPS 환자의 경우 회복이 됐다가도 영구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어 그는 “미국의학회도 (과거)엄격한 지침을 만들었지만, 윤리적으로 부적절하고 실용적이지 못해 결국 최신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통증의학회 측은 “CRPS 장애진단의 객관적 가이드라인 제시를 위해 학회차원의 논의가 진행중이다. 이번 장애평가기준 개정판(2판)의 통증장애 진단기준의 문제를 우려하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송병기 기자
통증환자 울리는 장애평가 기준
입력 2017-02-19 18:05 수정 2017-02-20 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