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국적 이정철 검거…도주 4명 평양 도착”

입력 2017-02-19 18:03 수정 2017-02-20 01:11
말레이시아 경찰이 지난 17일 쿠알라룸푸르 인근에서 김정남 살해 용의자인 북한 국적자 이정철을 붙잡아 이송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북한에서 약학과 화학을 전공한 이정철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화학약품 실험 모습. 현지 경찰은 이정철을 북한 정찰총국 소속 요원으로 보고 있다. 더스타·페이스북

김정남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말레이시아 경찰이 사건 발생 이후 처음 가진 기자회견에서 “검거된 이정철과 도주한 용의자 4명은 모두 북한 국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존에 알려진 이들 용의자 5명 외에 범행에 연루된 북한인 3명을 추가 공개했다. 이는 이번 암살이 북한에 의해 저질러졌음을 확인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쿠알라룸푸르 부킷 아만에 위치한 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용의자 이지현(33) 홍송학(34) 오종길(55) 이재남(57)의 이름과 사진, 여권번호를 공개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7일에 걸쳐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이들은 사건 당일인 13일 함께 출국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북한에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싱가포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도주한 용의자 4명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지난 17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암살에 연루된 이지유(30) 등 북한인 3명을 추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르 라싯 이브라힘 경찰청 부청장은 ‘용의자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이들은 북한 국적”이라고만 답했다.

경찰은 김정남 사인을 여전히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브라힘 부청장은 “독성물질 분석 결과가 담긴 부검 보고서를 아직 제출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정남 시신 인도와 관련해서는 “유족의 DNA 표본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유족이 2주 안에 말레이시아를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다른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지난 17일 오후 9시50분쯤 쿠알라룸푸르 잘란 쿠차이 라마 지역의 한 아파트에서 외국인 근로자 허가증(I-KAD)을 가진 이정철을 붙잡았다. 북한에서 약학과 화학을 전공한 그는 가족과 함께 이 아파트에서 지내며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경찰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 정찰총국 소속 이정철이 체포 당시 숨어 있던 아파트는 2011년부터 북한 공작원이 은신처로 사용한 곳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8월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이정철이 북한 고정간첩으로 활동하면서 김정남 암살을 도왔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정철이 체포된 이후 북한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는 지난 17일 오후 11시30분 김정남 시신이 안치된 쿠알라룸푸르 병원을 찾아 “부검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김정남 시신을 즉각 인도하라”고 주장했다. 북한대사관은 또 이정철 면담도 요구했다.

우리 정부는 19일 김정남 암살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했다. 정부가 사건 배후로 북한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 직후 “용의자 5명이 북한 국적자임을 볼 때 이번 사건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쿠알라룸푸르=신훈 기자, 김현길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