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한국이나 대통령이 말썽이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최고 권력자가 국민들에게 분노와 좌절을 안기고 있다. 미국 대통령 중에는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한 걸출한 인물이 수두룩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니다. 선거 때부터 성품과 자질이 부족하다는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트럼프는 취임 한 달 만에 국정지지도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갤럽이 17일(현지시간)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38%로 나타났다. 갤럽 조사에서 취임 첫 1개월 국정지지도가 50% 이하로 떨어진 대통령은 1945년 이후없었다. 퓨리서치센터가 16일 공개한 트럼프의 국정지지도는 39%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낙마, 앤드루 퍼즈더 노동장관 후보자의 인준 실패,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총체적인 위기에 몰렸다. 특히 대선 과정에서 러시아 지원을 받은 의혹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다. 민주당은 벌써부터 탄핵을 거론하고 있고, 공화당 일부 중진들도 트럼프의 정체성에 심각한 우려를 보내고 있다. 미 의회의 초당적인 진상조사가 진행되면 사태가 어떻게 굴러갈지 예단하기가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지극히 ‘트럼프스러운’ 방식을 택했다. 언론을 적으로 선포하고, 지지자들이 몰려 있는 유세장으로 달려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18일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찰스턴 보잉 공장에서 유세를 펼쳤고, 19일에는 플로리다 멜버른공항 격납고에서 집회를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회에서 “주류 언론을 믿지 마라. 언론은 미국의 적”이라며 지지자들의 결집을 촉구했다. 일자리 회복과 불법이민 추방, 국경장벽 건설 등 자신의 선거공약을 되풀이하며 지지자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아직 선거가 끝나지 않았거나, 벌써 재선 운동을 벌이나 착각할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 행보는 공화당 의원들을 겨냥한 경고다. 자신을 떠받치는 지지자들이 여전히 견고하니 흔들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내년 중간선거를 치러야 하는 의원들은 눈치를 볼 것이라는 계산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지지자들이 등장한 것에 고무돼 선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고, 자신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전달해줄 인터넷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재기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지지자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지만 땅바닥에 떨어진 국민들의 신뢰를 찾기는 지금으로선 불가능에 가깝다. 탄핵심판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박 대통령이 권위를 회복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박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서 눈여겨 볼 것이 하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내친 참모라고 하더라도 공개석상에서 비난하거나 적으로 돌리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하고도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플린 전 보좌관이 취임하기 전 민간인 신분으로 주미 러시아 대사와 접촉해 러시아 제재를 풀 것인지 말 것인지 협의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인데도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두둔했다. 박 대통령은 한때 자신을 도운 사람들과 너무 많이 척을 지고 있다. 자신이 임명한 장관조차 박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자신으로 인해 숱한 사람들이 쇠고랑을 차고 있는데도 여전히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식이다. 이제라도 박 대통령은 주변의 허물조차 자신의 것으로 안고 가겠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벗기 위해 천막당사를 세울 당시의 결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모든 걸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특파원 코너-전석운] 트럼프와 박근혜
입력 2017-02-19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