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여기 있으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나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같은 정권 실세를 눈앞에서 볼 수 있고, 운이 좋으면 트럼프와 마주쳐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이곳은 트럼프가 겨울시즌 주말마다 자주 찾아 ‘겨울 백악관’이라 불리는 마라라고 리조트다. 대통령이 머리 식히는 단순한 별장이 아니라 또 하나의 중요한 정치무대이자 이권 로비가 벌어질 수 있는 곳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8일(현지시간) 마라라고 회원 500명의 명단을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다.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위치한 8만여㎡(2만4500평) 규모의 마라라고는 회원제로 운영된다. 가입비는 20만 달러(2억3000만원), 연회비는 1만4000달러(1610만원)다. 가입비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서 2배 뛰었다.
NYT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업자, 월가 금융인, 에너지기업 임원 수십명이 마라라고 회원이다. 모두 정부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 업계 관계자다. 또 최소 3명의 회원은 미국의 해외 대사직 후보로 꼽히고 있다.
석유부산물 판매업체 ‘옥스보우 카본’을 경영하는 윌리엄 코흐 회원은 지난달 트럼프가 대형 송유관 건설을 다시 추진하도록 지시함에 따라 상당한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회원 중 ‘뉴스맥스 미디어’ 최고경영자(CEO) 크리스토퍼 루디와 기업가 겸 변호사 브라이언 번스는 주아일랜드 대사 물망에 오르고 있다.
신규 회원 리처드 디에가지오는 지난 11일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당시 만찬 중이던 미·일 정상이 다급하게 상황을 보고받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장면을 코앞에서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일로 화제가 됐다. 기자도 아닌 은퇴한 투자가가 단지 마라라고 회원이라는 특전으로 국제안보 위기 대응의 최전선을 지켜보고 실황 중계한 것이다.
백악관 대변인 호프 힉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마라라고 회원들과 정책 논의를 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마라라고에서 트럼프와 자주 만나는 부동산 개발업자 브루스 톨은 “트럼프와 구체적인 사업 얘기는 나누지 않지만 고속도로 등 인프라 확충 같은 국내 이슈에 대해선 가끔 논의한다”고 말했다.
미 대통령사(史)를 연구하는 존 미첨은 “사람들이 돈을 쓰는 대통령 본인의 사업체인 마라라고는 대통령직의 상업화를 보여준다”며 “미국 역사에서 유례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마라라고를 통한 이권 로비 가능성이 제기되자 트럼프의 차남 에릭은 “신규 회원이 매년 20∼40명으로 제한되고, 부유한 기업인 회원들은 (이것 말고도) 연방정부와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이미 많이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트럼프가 공사(公私) 구분 없이 자기 과시가 얼마나 심한지, 본인 사업체 회원들을 얼마나 편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도 나왔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후 조각(組閣)에 돌입했을 시기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연 파티의 녹음테이프를 공개했다. 여기서 트럼프는 “내일 많은 인터뷰가 있다. 장군도 있고 독재자도 있다. 재무장관, 국무장관 후보와 면접을 한다. 여러분도 오고 싶으면 와도 된다. 재미있을 것이다. 와보면 믿을 수 없을 거다”라고 자랑했다.
글=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마라라고’ 회원권은 트럼프로 통하는 길?
입력 2017-02-19 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