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산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커져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3일까지 6일간 미국 제조업의 심장부 ‘러스트 벨트(Rust Belt)’를 다녀온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지 분위기를 이같이 평가했다. 러스트 벨트는 대표적 공업지대였으나 쇠퇴한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 지역을 지칭한다. 성 교수는 러스트 벨트 중 미시간주와 일리노이주를 중점적으로 방문했다. 특히 그곳에서 만난 자동차, 의류, 인프라 관련 업체 관계자들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기대치는 예상보다 높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성 교수는 지난 17일 연세대 집무실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F150 픽업트럭을 생산하는 포드 공장의 분위기는 활발했고, 자동차 대시보드를 만드는 디트로이트 매뉴팩처링이란 업체는 공장 증설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미국 산업이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폐공장 지대도 가봤지만 제조업을 위한 공간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었다”며 “앞으로도 트럼프발 기대감에 기반한 제조업 부흥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 내다봤다.
트럼프 정부의 국내 제조업 부활 정책과 더불어 주목받는 부분은 인프라 투자 공약이다. 성 교수는 미시간주를 방문했을 때 낡은 도로와 교량을 마주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프라에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 교수는 “현지 인프라 관련 업체는 미국의 도로와 교량이 대부분 노후화한 만큼 교체 수요는 넘쳐 난다고 말했다”며 “여기에 물,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인프라 투자가 고급 인력들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부분이다. 성 교수가 방문했던 세계 최대 중장비 업체 캐터필라의 연구·개발(R&D)센터에는 공학·경제학 박사들이 향후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성 교수는 “수십㎞ 떨어진 도심에서 광산의 중장비를 끄는 연구 등 인프라에도 4차 산업혁명이 적용되고 있었다”며 “인프라 산업도 과거와 달리 저임 근로자 대신 고급 인력이 공급되는 상황이 진행 중”이라고 평가했다.
현지 분위기가 바뀐 것이 트럼프 때문만은 아니다. 해외로 공장을 옮긴 기업을 돌아오게 하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은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 때부터 진행해 왔다. 다만 트럼프가 이를 승계하면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 것이 기대감을 증폭했다는 평가다.
물론 후폭풍도 있다. 성 교수가 입국했던 1월 29일은 미국 정부가 이슬람 7개국 입국 금지를 공식 발표한 날이다. 성 교수는 “공항에서 시위하는 이들을 비롯해 분위기가 험악했다”며 “곳곳에는 변호사를 소개시켜준다는 피켓도 눈에 띄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국내 불안 요인이 있더라도 향후 경기 활황은 뒤집을 수 없는 추세라고 성 교수는 평가한다. 중요한 점은 무역 의존도가 큰 우리나라에도 미칠 영향은 크지만 과거처럼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데 있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 예고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자국 주력 산업에 위협이 되는 타국 산업은 ‘적’이다. 성 교수는 “최근 LG화학과 애경유화 상계관세 부과를 비롯해 중화학과 철강, 자동차 산업은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가격 이외의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탄핵 정국 속 어수선한 정부도 미국 대응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첨언했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차기 정부가 최우선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성 교수는 “트럼프 정부가 중국, 독일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읽히듯 통상 정책은 미국에 이득이 되는지 여부가 판단의 원천”이라며 “우리가 미국에 얼마나 이득을 주는지를 설득하면서 상호간에 경제적 ‘윈윈’ 관계를 가져갈 수 있도록 외교·통상 노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기업 환경에 대한 조언도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기업 환경’에 따른 한국 기업 유출은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기업 환경 때문에 한국을 떠나도록 만드는 경우는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성태윤 연세대 교수 “美 제조업 부흥 기대감 어느 때보다 높아”
입력 2017-02-19 18:33 수정 2017-02-19 2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