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사실이 있다. ①청와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도왔다. ②삼성은 최순실 모녀와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지원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①과 ②를 연결하려고 부단히도 애를 써왔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두 사안의 꼭대기에 자리했다. ①과 ② 사이에 대가 관계가 존재함을 증명해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는 명제를 도출하는 게 원정의 시작이고 종착지였다. 박 특검은 이를 “국민 주권의 명령”이라 했다.
삼성은 줄곧 ①과 ②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②는 ①의 대가가 아니라 청와대의 공갈·강요가 탄생시킨 돌연변이란 논리다. 실체적 진실을 알고 있을 핵심 인물들은 하나같이 아니다, 모른다고 버텼다. 특검은 뇌물 수사의 핵심인 공여자 진술을 기대할 수 없는 핸디캡을 안고 싸워야 했다. 그렇게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319호 법정에서 삼성과 두 번째 전투를 치렀다. 지면 추락하는 상황에서 양쪽은 역대 최장 시간인 7시간30분간 치고받았다. 법원은 다음날 새벽 특검에게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내줬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야합은 오래된 일이다. ‘기브 앤드 테이크’의 작동원리는 여전하지만 그 양태는 갈수록 은밀하고 변화무쌍해져 좀체 꼬리를 내보이지 않는다. 삼성이 탁월한 정보력으로 최순실씨의 존재를 간파하고 줄을 대려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면, 최씨가 딸의 말값마저 기업 주머니에서 뜯어내려는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①과 ②의 연결선은 이번에도 잡히지 않았을 거다. 무엇보다 대통령마저 벼랑 끝에 서게 한 ‘최순실 게이트’의 지진이 없었다면 유착의 흔적이 세상에 드러나는 일도 없었을 터다. 총수를 내준 삼성은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며 더 큰 싸움을 준비 중이다.
특검의 원정은 끝나지 않았다. 두 개의 거탑(巨塔) 중 하나를 무너뜨리고 남은 하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끝까지 대면을 거부해도 박 대통령이 비켜설 곳은 없어 보인다.
글=지호일 차장, 삽화=전진이 기자
[한마당-지호일] 두 개의 탑과 특검
입력 2017-02-19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