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정권의 미국에 대한 정성이 각별하다. 지난 10일 아베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사람의 회동은 작년 11월 아베 신조 총리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뉴욕에 날아가 당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만난 이후로 두 번째. 아베 총리 자신은 지난 반년 동안 네 차례나 미국을 방문했다. 회담 후 두 정상은 에어포스원에 동승해 플로리다에 위치한 트럼프 골프장으로 이동, 함께 골프를 치고 하이파이브도 하면서 인간적 친밀감을 돈독히 쌓았다. 일본 외무성은 이번 골프 회동이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총리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50년 만이라고 홍보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정상회담은 전반적으로 무난했다는 평가다. 핵심은 일본의 경제적 기여와 미국의 안보 공약의 맞교환. 우선 아베 총리는 트럼프 정권의 성장 전략에 발 벗고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자동차산업 등 일본 기업의 직접 투자를 독려하고, 인프라 투자에 무려 51조엔을 투입해 70만명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미·일 성장고용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에선 사상 최대의 ‘조공외교’라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올 정도였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핵우산에 의한 일본 방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미·일 안보조약 5조 적용 확인, 동·남중국해에서의 중국 견제 등을 ‘문서’로 확인해줬다.
한국 내에선 ‘트럼프-아베 밀월관계’가 마련되었다며 부러움을 금치 못한다. 1980년대 레이건-나카소네 관계를 넘어설지 모른다는 점괘도 나온다. 단순히 한·미 관계와 미·일 관계만 비교하면 그렇다. 하지만 일본 입장에선 미·일동맹의 미래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첫째, 우려한 대로 경제와 안보를 거래하는 트럼프식 외교가 별다른 저항 없이 통용됐다. 동맹을 인질로 대미 무역 흑자와 무역 장벽, 환율정책 양보를 요구하는 방식은 이번 일로 끝은 아닐 것이다. 둘째, 트럼프 정권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에 서명했다. 일본은 민주당 정권 이래 안보조약과 TPP를 동맹의 두 축으로 삼아 왔다. 자유롭고 공정한 아시아·태평양 통상 질서를 함께 리드하자는 아베의 제안을 ‘미국 제일주의’를 내건 트럼프가 당장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 공약 문서화로 일본 측의 불안감은 일부 불식됐다. 하지만 센카쿠나 대만 유사시 핵전쟁을 감수하면서 핵우산을 제공해줄 것인지 뿌리 깊은 의문은 남는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동맹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넷째, 일본 최대의 안보 위협은 중국이다. 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방중처럼 자국을 배제한 미·중 간 거래 시나리오를 최악으로 간주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중국에 ‘대만 카드’를 꺼내들었다. 중국과도 경제-안보 거래 방식을 취하고 시진핑 정권이 응할 경우 미·중 간 그랜드바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만, 사드, 동중국해·남중국해 등 어떤 거래든 미·일동맹의 대중 견제는 이완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대미 동맹 없는 일본 안보는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비용을 지출하는 일 외엔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비용은 경제적 양보는 물론 과도한 친미에 대한 내셔널리즘적 반발까지 수용해야 한다.
우리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미동맹을 인질로 삼을 경우 사드 배치는 끝이 아닌 출발점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빨라야 이른 여름 이후다. 대비할 시간이 조금은 있는 셈이다. 경제-안보 거래, 미·중 간 타협, 미·일동맹 이완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임해야 한다.
서승원 고려대 교수 <글로벌일본연구원장>
[한반도포커스-서승원] 미·일 밀월관계라지만…
입력 2017-02-19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