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집은 오래된 아파트인데,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욕실 수전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아무리 꽉 잠가도 물이 샜다. 환풍기를 돌리면 소리만 요란하고 아무것도 빨아들이는 것 같지 않아서 마스크를 쓰고 환풍기를 뜯어봤다. 새까맣고 고운 먼지로 구멍이 꽉 차 있었다. 그 먼지들 때문에 모터는 고장 난 지 오래된 듯. 바로 철물점에 가서 2만원 되는 모터를 사다 욕실 환풍기를 갈았다. 그리고 환풍기 수리 전과 수리 후 사진을 찍고, 물이 새는 욕실 수전의 교체 수리 견적을 받아 그 내용을 집주인에게 보냈다. 그 후 집주인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왜 남의 집에 살면서 말도 안 하고 욕실 환풍기에 손을 댔나, 오래된 집인 거 알고 계약한 것 아닌가, 욕실 수전 고장 난 것은 세입자 책임이다. 그런 사소한 것을 달랄 것 같은 사람인줄 알았으면 당신과 전세계약 하지 않았다. 앞으로 집에 관련된 문제는 부동산 중개인에게 연락하고 나에게는 직접 문자 하지 말라.’
가뜩이나 이사 나올 때도 전 집주인으로부터 바닥 긁힌 것과 벽들의 못 자국을 완벽하게 원상복귀해야 잔금을 준다고 해서 이삿짐 옮기자마자 내 짐도 정리 못 하고, ‘메꾸미’라는 것을 들고 가 수리해주고 나왔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모서리 벽지가 뜯어진 것을 시트지로 붙인 것을 발견하곤, 도배비라며 잔금에서 10만원을 떼이고 받았다. 그렇게까지 마음고생하며 그 집을 나왔는데, 이사 온 현 집주인은 그보다 더한 사람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집을 투자 목적으로, 전세 끼고 사서, 시세차액이 생기면 팔려는 ‘갭투자자’들이라는 점이다.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없는 사유재산 권한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그 모든 짓은 합법적이라고 한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것이 법이 아닐까 싶은데. 막상은 합법적인 부도덕자들이 돈을 버는 현실이다. 이러니 누가 법을 지키며 착하게 살려고 할까? 국정을 농단하며 세금을 떼어먹는 이들과 저들이 뭐가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유형진(시인), 그래픽=전진이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법보다 높은 집주인
입력 2017-02-19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