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망명정부 수립에 가담해서 北이 제거?

입력 2017-02-18 05:01
미국 워싱턴포스트(WP) 특파원 애나 파이필드가 16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한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사진. 파이필드는 “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은 취재진이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게 아예 제거해 버렸다”고 적었다. 애나 파이필드 트위터 캡처

김정남 암살사건을 계기로 해외 북한 망명정부 관련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정남이 망명정부 수립을 추진 중인 탈북단체와 접촉한 것이 드러나 북한의 의심을 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망명정부설은 현실화되기 어렵고, 미국 등에서도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다. 김정남 암살과 직접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산케이신문은 17일 복수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친척을 옹립해 망명정권을 수립한다는 움직임이 있어 북한 당국이 국외 친척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김정남이 망명정권을 계획한 탈북자와 접촉했다는 정보도 있어 가담을 의심한 북한 당국에 의해 암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에는 일본 지지통신이 “(김정남이) 망명정권 간부로 취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정남의 ‘망명정부 관여설’은 ‘중국의 김정남 보호설’과 함께 김정은 체제를 압박하는 근거로 해석된다. 북한은 2011년 말 김정은 집권 이후 핵·미사일 능력을 꾸준히 고도화해 후견국인 중국과의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 내부적으로는 고모부인 장성택을 비롯한 핵심 측근들까지 무자비하게 숙청하며 지도층을 동요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유사 사태를 가정한 망명정부 수립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 김 위원장에게 큰 위협이다.

중국의 김정남 보호설 역시 마찬가지다. 김정남과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한 고미 요지 도쿄신문 편집위원은 책에서 “중국은 그들과 가까운 김정남을 평양으로 돌려보내 차기 지도자로 세우려는 의도가 있다. 당연히 김정남 자신도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썼다.

이 중 망명정부 수립 논의는 지난해 다시 불거지며 주목을 받았다. 2000년대 초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중심으로 관련 논의가 이뤄졌으나 구체화되진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국내외 탈북단체를 중심으로 “미국 등지에서 내년 안에 망명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 사무총장은 당시 BBC에 “유럽 지역에 사는 김씨 가족 성원 중 망명정부 지도자로 추대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영국에 있는 탈북단체가 지난달 1일 “‘북조선망명정부’ 김평일(김정일 이복형제) 옹립 목소리 높다”는 내용의 대북전단을 북한을 향해 보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들 단체가 김정남과 접촉을 시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망명정부 수립과 김정남 암살 사이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망명정부 수립 움직임과 관련해 김정남을 제거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가능성은 낮다”며 “망명정부 수립 역시 현재로선 구체화된 게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대북 소식통도 “유엔이 북한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망명정부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지 미지수”라며 “이런 상황에서 김정남이 접촉에 응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