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훈 특파원 쿠알라룸푸르 르포] 피해 우려하는 한인 사회 김정남 거론되자 손사래

입력 2017-02-18 05:02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동쪽에 위치한 암팡 한인타운이 17일 오가는 사람이 없어 썰렁한 모습이다. 지난 13일 발생한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말레이시아 한인 사회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신훈 특파원
김정남 암살 사건의 배후가 여전히 오리무중인 가운데 말레이시아 한인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17일 수도 쿠알라룸푸르 동쪽 한인 밀집 거주지역인 암팡에서 만난 교민들은 기자가 ‘김정남’이라는 이름을 꺼내자 손사래부터 쳤다. 경계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 붙잡힌 두 번째 용의자는 범행 이후 한국대사관이 위치한 이곳 암팡의 한 호텔에서 숨어 지냈다.

쿠알라룸푸르 중심가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암팡은 한식당, 국제학교, 한인교회, 찜질방 등이 밀집한 대표적인 한인타운이다.

말레이시아 경찰과 더스타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여권을 가진 25세 여성 시티 아이샤는 전날 오전 1시30분 암팡의 한 호텔에서 체포했다. 경찰은 이 여성을 호텔에 데려다준 말레이시아인 남자친구 무하마드 패리드 자랄루딘을 암팡 지역에서 먼저 검거한 뒤 추궁 끝에 아이샤의 소재를 파악했다. 아이샤의 호텔 방에서는 달러 지폐와 휴대전화 2대, 루이비통 지갑과 레이밴 선글라스 등이 발견됐다.

유흥업소 종업원인 아이샤는 다른 용의자를 알지 못했을 뿐더러 그들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제작진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호텔에서 발견된 고가의 소지품과 여분의 휴대전화를 봤을 때 단순히 금품 때문에 범행에 가담했다는 진술은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 두 번째 용의자가 암팡에서 붙잡혔다는 소식에 이 지역 교민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김정남 사망 소식은 한인 사회에서 주요 관심사였다. 이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최모(54)씨는 “한인들이 자주 찾는 쿠알라룸푸르 시내 중심가의 고급 술집에서 김정남이 자주 목격됐다”며 “요즘 한인들이 모이기만 하면 김정남 암살 사건이 화제로 오른다”고 전했다. 한인타운에서 식당을 하는 김모씨는 “김정남 사건 이후에 한국 친지들로부터 안부 전화가 자주 온다”고 말했다. 한국 식료품 매장 앞에서 만난 한 여성은 “김정남이 한국인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면서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순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인타운에서는 불안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한 한식당 사장은 “김정남을 전혀 모른다. 본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다”며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 한국대사관 앞에서 만난 교민 김기영(50)씨는 “괜히 한국 교민들만 피해를 입을까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말레이시아에 북한 사람은 얼마 살지도 않는데, 어차피 현지인이 한국, 북한을 제대로 구분하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글·사진=신훈 특파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