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수송보국(輸送報國) 꿈이 담긴 한진해운이 창립 40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해운경기 침체에 따른 유동성 악화가 1차 원인이다. 하지만 해운업 구조조정을 주도한 정부와 금융 당국의 거듭된 정책 실패도 한몫했다.
한진해운이 사라진 국내 해운업은 해외 대형 선사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나서는 세계 해운업계에서 왕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한진해운이 퇴출되면서 반토막 난 선박 운항 능력 등을 보완하기 위한 정부와 업계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진해운은 1977년 조중훈 창업주가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선사로 설립했다. 승승장구를 거듭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운 운임이 급락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2014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해운 경영권을 넘겨받은 이후 에쓰오일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총 2조2429억원을 한진해운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고 호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한진해운은 지난해 5월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고, 9월 법정관리에 돌입한 뒤 파산하게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금융 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 업계 안팎의 요구가 쏟아지는데도 우물쭈물하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골든타임을 놓쳤다. 한진해운의 숨이 넘어가는데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대주주의 책임만을 요구하다 회생 기회를 넘겨버려 전 세계적인 물류대란을 초래했다.
잠깐의 실수가 낳은 상처는 크다. 한진해운이 사라지면서 국내 해운업계의 선박 운항 능력은 반토막 났다. 한진해운이 보유했던 90여척의 선박이 사라지면 국내 컨테이너선은 현대상선(66척)과 SM상선(2척)이 보유한 68척만 남게 되는 상황이다. 세계 1·2위 선사인 머스크와 MSC의 운영 컨테이너선이 각각 622척과 484척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다. 한국 선사들의 컨테이너 수송 능력도 지난해 8월 106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에서 넉 달 후인 12월 51만TEU로 뚝 떨어졌다. 특히 한진해운 사태로 물류대란을 겪은 해외 선주들의 신뢰를 잃은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정부는 한진해운이 파산 이전 계약한 물류 중 97.7%가 화주에게 정상 인도됐고, 한진해운의 빈자리는 국내외 해운선사가 이미 승계했다며 더 이상의 물류대란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11월 기준 한국∼미주 수출 물량의 28.8%를 실어나르고 있다. 2015년 14.0% 수준에서 배 이상 늘었다. 한진의 알짜배기 노선이었던 아시아∼미주 노선 역시 다음달부터 재개된다.
한진해운 근로자들의 재취업 문제는 현재 논의 중이다. 전체 직원 1469명 중 782명이 SM상선 고용승계 등으로 흡수됐지만 여전히 600여명이 남았다. 협력업체까지 합치면 부산에서만 3000여명, 전국적으로는 최대 1만명의 실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전국 605개의 협력업체가 받지 못한 미수금 800억원도 아직 남아 있다.
정부는 해운 공백을 메우고자 지난해 10월 발표한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따라 6조5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해운업계에서는 세계 해운업계의 몸집 불리기 추세에 맞춰 국내 선사도 덩치를 다시 키워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내 선사가 금융 당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우량한 해외 선사를 인수해 덩치를 키우도록 정부가 기간산업 지원을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박세환 기자, 세종=신준섭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수송보국의 꿈’ 40년만에 침몰… 한국 해운 반토막
입력 2017-02-17 18:16 수정 2017-02-17 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