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새 수첩에 ‘삼성 방패’ 뚫렸다

입력 2017-02-17 17:38 수정 2017-02-17 21:12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윤석열 수사팀장, 양재식 박충근 이용복 특검보(왼쪽부터)가 17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이날 특검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을 발부받는 데 성공했다. 김지훈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창끝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견고한 방패를 뚫었다. 새로 찾아낸 뇌물거래 의혹의 퍼즐 조각들이 이 부회장 구속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서울중앙지법 한정석 영장전담판사는 17일 “새롭게 구성된 범죄 혐의 사실과 추가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규철 특검보(대변인)는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가 소명된다고 법원이 인정한 것”이라며 “지난 3주간 보강수사 결과 금품 제공이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과정 전반과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특검은 지난달 18일 1차 영장심사에서 ‘이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질책을 듣고 최순실씨를 지원한 피해자’라는 논리를 깨지 못했다. 국민연금은 앞서 2015년 7월 10일 삼성물산 합병 안건에 찬성 결정했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7월 25일 독대한다. 삼성은 9∼10월 최씨 측에게 78억원을 송금했다. 합병이 끝난 후 독대했고, 지원도 그 후 억지로 한 것이라 대가관계가 아니라는 게 이 부회장 측 주장이다.

특검은 1차 영장 기각 후 지난 3일 공정거래위원회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 부회장 논리를 순환출자 고리 해소와 관련된 새 의혹을 통해 깨기 위해서였다. 공정위는 2015년 12월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매각 규모를 1000만주에서 500만주로 줄여주는 특혜성 조치를 내린다. 특검은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공정위에 압력을 넣은 정황을 포착했다. 이 부회장이 단순한 피해자라면 청와대가 압력을 넣을 이유가 없다는 게 특검 시각이다.

특검은 또 최씨 딸 정유라씨가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9월 이후 삼성의 명마 블라디미르(30억원 상당)를 갖게 된 과정에 주목했다. 정씨가 이면 합의를 통해 블라디미르를 덴마크 말 중개상으로부터 넘겨받았다는 게 특검 주장이다. 최씨의 존재가 문제가 된 시점에 우회 지원에 나선 건 청탁 대가를 줘야 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16일 2차 영장심사에서 이 부회장 측은 순환출자 고리 해소 과정에 청와대에 청탁한 사실이 없고, 특혜도 받은 적 없다고 맞섰다.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해 9월 최씨를 만나긴 했지만 블라디미르 지원 요청은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정위 결정 및 정씨의 블라디미르 소유는 명백한 사실인 상황에서 법원의 의심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1차 영장심사 때 물증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었던 반면 이번 수사에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39권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검이 지난 설 연휴 직전 새로 확보한 수첩이다. 한 특검 관계자는 수첩을 두고 “하늘이 특검을 돕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 지시 등을 수첩에 받아 적은 사실을 특검 조사에서 인정했다고 한다. 수첩에는 삼성물산 합병 후에도 관련 대책을 지속적으로 강구하라는 내용 및 최씨 우회 지원 관련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특검보는 “수첩 내용이 상당히 중요한 자료였다는 점은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안 전 수석 측은 수첩의 증거능력을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법원이 박 사장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것도 이 부회장 지시를 받은 단순 하수인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이 사실상 최씨 금품 지원 등을 총지휘한 것으로 법원이 의심한다는 뜻이다. 법원은 “(박 사장의) 지위와 권한 범위, 실질적 역할에 비춰볼 때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