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장장 77분간 마라톤 기자회견을 했다. 회견은 분노와 호통으로 가득했다. 당초 회견은 자진사퇴한 앤드루 퍼즈더를 대체할 새 노동장관 후보자를 발표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해명과 공세, 각종 국정난맥상에 대한 반박이 길어지면서 격정의 기자회견은 1시간을 훌쩍 넘겼다. 회견 중 자국 기자와 언쟁한 데 이어 외신인 영국 BBC방송 기자와도 설전을 벌였다. 기자회견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화풀이 모노드라마’ 같았다.
트럼프는 회견에서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부터 터뜨렸다. 그는 “TV를 켜고 신문을 보면 온통 국정 혼란을 다룬 보도들”이라며 “내가 지명한 장관 후보가 비록 의회에서 다 인준되지 않았지만 지금 행정부는 잘 조율된 기계처럼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난장판 국정을 물려받았지만 이렇게 짧은 기간에 놀라운 업적을 만들어내는 행정부가 없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업적인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를 폐기하고, 새로운 건강보험제도를 시행하는 방안을 다음 달 중순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특히 논란이 된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보완한 새로운 행정명령을 다음 주중 내놓을 것이라고 밝혀 또 한번 파장과 혼란이 예상된다.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 무슬림 7개국 출신 국민의 미 입국을 금지한 행정명령은 항소법원에서 효력정지 결정이 내려진 상태다.
트럼프는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사퇴 이후 러시아 스캔들이 더욱 확산된 것에 대해 “러시아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플린이 주미 러시아대사와 접촉해 러시아 제재 해제를 논의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내 지시를 받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내가 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라고 두둔했다.
트럼프는 러시아 스캔들을 집중 보도하고 있는 언론에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또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에게 정보를 언론에 유출한 정보기관을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그는 “(러시아 스캔들을 다룬 보도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나오는데 모두 가짜 뉴스”라며 “정보기관들이 이들 가짜 뉴스에 정보를 흘리는 건 진짜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말해 언론과 정보기관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트럼프는 그러면서 “내가 북한처럼 ‘정말 정말 중요한 주제’를 다룰 때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트럼프는 북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북한에 대해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여러분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CNN방송 기자가 “대통령께서 우리 회사를 ‘가짜 뉴스’라고 했는데…”라며 질문을 시작하자 말을 가로채며 “그럼 말을 바꾸겠다. CNN은 ‘아주 심한(very) 가짜 뉴스’”라고 면박을 줬다.
트럼프는 또 BBC방송의 존 소펠 기자가 반이민 행정명령과 관련해 질문하자 얼굴을 찡그리면서 “어느 회사에서 일하느냐”고 물었다. BBC라고 답하자 “여기 또 다른 아름다운 게 있네”라고 비아냥거렸다. 이에 기자가 “BBC는 공정하고 올바르다”고 반박하자 “맞다, CNN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소펠 기자는 회견이 끝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사장이 새로운 명함을 파는 걸 허락했다. 존 소펠: 또 다른 아름다움, 북미 담당 편집자”라고 적었다.
이런 가운데 미 정보기관들이 트럼프에게 일부 민감한 정보를 보고하지 않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WSJ는 정보기관들이 외국 정부에 대한 첩보활동을 누가 어떤 식으로 하는지 트럼프에게 보고하는 것은 미국의 안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판단해 보고에서 누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보기관들의 이런 태도는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WSJ는 풀이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을 근거가 없다”고 말했으며, 국가정보국(DNI)도 “대통령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퓨리서치센터가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국정지지도는 39%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러시아 스캔들이 확산되면서 지지도는 더 추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첫 한 달 동안 국정지지도를 보면 버락 오바마 64%,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63%, 빌 클린턴 56%, 로널드 레이건 55%,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53% 등으로 모두 50%를 웃돌았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NYT·WP·WSJ 모두 가짜뉴스”… 트럼프의 격정 회견
입력 2017-02-17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