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올스톱 상태… “경영 시스템 붕괴 위기감”

입력 2017-02-18 00:03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17일 서울 서초구 삼성서초타운에 출근한 삼성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건물 밖으로 나가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1938년 창사 이래 총수가 구속된 건 처음이다. 오너 없이 회사가 운영된 적이 없어 삼성이 느끼는 위기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삼성이 비상경영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내부 분위기는 이보다 심각하다. 비상경영을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삼성이 올 스톱 상태라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16일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할 리더십이 없는 게 현재 상황”이라며 “(이 부회장의 공백은)실적, 주가 등 단기적인 수치로 이야기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고 우려했다.

2인자 격인 최지성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서 위기를 수습하는 것도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최 부회장 역시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의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의 그룹 내 역할이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하지만 삼성은 “가능성이 없다”며 일축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경우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년 이상 일해 왔다. 반면 이 사장은 전자와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게다가 삼성전자 지분도 없다. 삼성그룹 전체 매출 300조원 중 200조원을 차지할 정도로 삼성전자의 비중은 그룹 내에서 절대적이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험도 지분도 없는 인사에게 경영을 맡기는 게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장단협의체를 중심으로 비상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서로 다른 사업을 하는 경영진이 만나서 조율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경영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점점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삼성은 이 부회장 경영 공백이 장기화되면 중요한 투자나 인수·합병(M&A) 등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특히 걱정하고 있다. 변화와 부침이 심한 IT 업계에서는 속도를 주도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스마트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현재 삼성전자가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업도 지속적인 투자가 없으면 중국에 추격당할 위험이 높다. 또 장기적으로는 계열사 간에 사업 조정도 제대로 안 되면서 중복투자나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미래 먹거리 사업을 찾아내면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3월로 예정된 갤럭시S8 공개 등 현재 계획돼 있는 사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 부회장 구속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가 악화되면서 실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사장단 및 임원 인사, 조직 개편, 신규 채용 등에 줄줄이 제동이 걸리면서 조직 사기나 업무 의욕도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삼성은 부문별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현재 사업을 챙기면서 이 부회장이 조속히 경영에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은 “앞으로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짧은 입장을 내놨다.

글=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