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파산 선고로 한진해운 회사채는 휴지조각이 됐다. 17일 현재 한진해운 회사채 발행 잔액은 2000억원 정도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모 회사채 규모는 이보다 3배 많은 7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사모 회사채 대부분은 정부가 만든 ‘회사채 신속 인수제’를 통해 발행됐다. 정부는 2013년 한진해운을 포함해 해운·철강업종 5개 대기업의 일시적 자금난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이들 기업의 회사채를 산업은행이 인수해주는 회사채 신속 인수제라는 것을 도입했다. 정부 판단에 신용도는 낮지만 회복 가능성이 큰 기업이 지원 대상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산업은행이 나서서 지원하지만 신용보증기금(신보)이 새로 발행한 회사채의 절반가량을 보증을 서는 구조였다. 당시 정부는 한진해운이 살아날 것으로 보고 보증을 강권했다. 신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따랐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정부의 판단은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고 신보는 4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보게 됐다. 한진해운을 포함해 정부가 회사채 신속 인수제 지원 대상으로 선정한 5개사 중 3개사(현대상선 동부제철)는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이들 기업에 지원한 금액을 합치면 정부 손실액은 1조원 가까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돈은 고스란히 국민 혈세로 충당된다. 신보의 주 업무는 담보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보증을 서주는 것이다. 그런데 중소기업도 아닌 대기업 지원에 신보를 억지로 끌어들였던 정부는 이제 와서 ‘나 몰라라’ 식이다.
기본적으로 투자는 리스크를 감내하고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누구도 이를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투자’를 강요해 결국 국민 세금을 축낸 공무원이 누구인지 이제라도 찾아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똑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는다.
이성규 경제부 기자 zhibago@kmib.co.kr
[현장기자-이성규] 혈세만 축낸 회사채 신속인수제
입력 2017-02-17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