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聯 정부, 남·북 외교전 속‘아리송 행보’

입력 2017-02-16 21:36 수정 2017-02-17 00:33
아마드 자히드 말레이시아 부총리가 16일 수도 쿠알라룸푸르 인근 푸트라자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그는 “김정남의 죽음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 추측일 뿐”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을 처리하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당초 말레이시아는 시신의 북한 송환을 거부하고 부검을 실시하는 등 원칙적인 입장을 유지했으나 점차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김정남 사건을 둘러싼 남북의 ‘밀고 당기기’식 외교·첩보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김정남 사건 처리는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에 모든 권한이 있다. 말레이시아 영토 안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가 지나친 요구를 하면 사법주권 침해 소지가 크다. 북한이 김정남 피살 직후 부검도 하기 전에 시신 인도를 요구하자 말레이시아 당국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말레이시아가 16일 김정남의 사인을 ‘불명’으로 설명하고 시신을 북측에 인도할 뜻을 밝히자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용의자들의 대북 연관성은 물론 정확한 국적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시신의 북한 인도가 이뤄지고, 정확한 사인이 규명되지 않을 경우 진상규명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말레이시아가 북한 입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하던 우리 정부도 침묵을 깼다. 정부는 익명의 당국자를 내세워 “말레이시아 부총리가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말레이시아 측이 이번 사건이 종결되기 전까지는 시신을 인도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사건 수습보다는 진상규명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입장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 정부는 ‘로 키(Low-key)’ 대응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번 사건을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환기시키는 계기로 만들려고 한다. 이런 속내는 미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공식적으로는 입장 표명을 일절 삼가면서도 물밑에서 ‘범인은 김정은’이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보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북한 역시 이번 일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어쨌든 ‘백두혈통’과 관련된 사안인 데다 김정은이 주범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질 경우 북한 ‘최고 존엄’의 명예가 실추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특히 대외 관계가 협소한 북한에 무비자 입국을 허용할 정도로 북한의 주요 우방 중 하나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히는 만큼 주요 정보기관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국가로 통한다. 세계 최고 정보 조직인 미 CIA의 아시아 헤드쿼터 소재지가 말레이시아라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말레이시아가 사실상 미국 정보 당국의 안마당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있다. 바꿔 말하면 제3국이 자기 입맛대로 정보 공작을 벌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김정남이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서 자유롭게 활동했고, 북한이 이를 역이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당사국인 남과 북은 물론 중국과 일본 역시 김정남 피살 직후 자국 정보기관 간부급들을 말레이시아로 급파해 관련 정보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성은 정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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