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훈 특파원 쿠알라룸푸르 르포] 말聯 시민들 “왜 하필 우리나라에서…” 北에 분노

입력 2017-02-16 17:36 수정 2017-02-16 21:30
전 세계에서 찾아온 기자들이 16일 김정남 시신이 안치된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병원(HKL) 앞에서 부검 결과가 발표되길 기다리고 있다. 충격적 사건이 빚어진 때문인 듯 현지 시민들도 현장을 자주 찾곤 했다.
신훈 특파원
김정남 사망과 용의자 체포 소식에 말레이시아인들이 우려를 넘어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16일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시민들은 자국 국제공항에서 암살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범행의 배후로 추정되는 북한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컸다. 한 시민은 “북한 주민을 추방하고 국교를 단절하자”고 주장했다.

난데없는 암살에 놀란 현지인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어 보였다.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용의자 체포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날 김정남 시신 부검이 실시된 쿠알라룸푸르 병원(HKL)에서 만난 의사 스테파니는 기자에게 “김정남이 정말 독살된 것이 맞느냐”고 거듭 물었다. 그는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사건이 잔혹한 만큼 부검 결과에 대한 관심도 컸다. 쿠알라룸푸르 시민들은 김정남 시신이 안치된 포렌식 병동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한국어 영어 말레이어 중국어 일본어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취재진과 함께 병동 주변을 살피던 환자 베기(60·여)씨는 “여성 2명이 포함된 암살조가 김정남을 독살했다는 뉴스를 봤다.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재차 부검 결과를 물어왔다.

말레이시아인들은 북한도 중국도 아닌 왜 하필 말레이시아에서 암살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놨다. 암살이 벌어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3층 국제선 출국장에서 발권을 하던 하산(55)씨는 “용의자들이 쿠알라룸푸르 시내를 버젓이 돌아다닌 것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아직 용의자가 몇 명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왜 그랬는지도 다 파악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항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기사 이스마일(23)은 “이름도 모르는 북한 사람(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그것도 공항에서 암살되는 바람에 괜히 관광객만 줄어들 것 같다. 그러면 애꿎은 시민들만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쌓인 불만은 북한을 향해 터져 나왔다. 아들 디페시쿠마(14)를 학원에 데려다주던 프라밧(48)씨는 “북한 독재자(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가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인이 아닌 것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암살은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60대 남성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에 공식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면 북한과 외교 관계를 끊고 북한 사람을 추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 이후 미얀마가 북한과 단교한 사실을 예로 들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사관을 개설하고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해온 양국 관계에 균열이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한 의문이 커져만 가고 있는 가운데 이날도 중무장한 경력 10여명이 HKL 포렌식 병동 주변을 철통 경비했다. 취재진의 질문은커녕 접근도 허락하지 않았다. 전날 김정남 시신 인도를 요청하며 실랑이를 벌였던 북한대사관 관계자들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중국 취재진은 중국대사관이 보안상 이유로 취재를 거부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현지 경찰은 브리핑 없이 배포한 한 장짜리 보도자료로 용의자 추가 체포 사실을 알렸다.쿠알라룸푸르=글·사진 신훈 특파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