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의 사회 갈등은 심각하다. 예전에는 좌우의 이념적 갈등과 계층 갈등, 지역 갈등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진보와 보수로 갈라지는 세계관 갈등과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사회 갈등의 심화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결정적 배경으로 자리한다.
첫째는 가속화되는 세계화로 인해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과 저성장체제로의 급격한 재편이다. 사회적 역동성이 저하됨에 따라 계층이나 신분 상승도 어려워지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을 드러내 주는 ‘헬조선’이라는 극단적 용어마저 등장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한국은 여전히 남북 분단이라는 치명적 갈등 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통합과 안정을 위협하는 원인에 대한 통찰은 우리 사회의 갈등 극복, 평화 이루기(peace-making)가 국내적 문제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과제임을 인식하게 해 준다.
국내, 국제적 사회 갈등의 심화라는 반평화적인 현실은 화해와 평화를 대중적 주제어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말들이 대중화될수록 현실에서 화해와 평화의 개념은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슬로건을 넘어서는 화해와 평화에 대한 명료한 개념 정립과 함께 사회적 합의와 실천을 위한 노력이 적극적으로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신앙공동체인 교회에 평화 이루기는 본질적이며, 우선적 과제이다. 갈등 사회 안에서 교회가 평화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은 그 세상과의 소통을 포기하는 것이며 더욱 근본적으로는 교회됨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화해와 평화의 사도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고후 5.17).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들의 공동체, 즉 교회는 평화를 위한 자신의 소명과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성경이 증거하는 평화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형성과 맥을 같이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표식이 바로 평화다. 평화는 하나님의 주권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단지 갈등과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 인류,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설정되는 행복하고 조화로운 상태를 뜻한다.
또한 평화는 적극적으로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간구하는 것, 즉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갈망에 잇대어 있다. 그리스도인이 평화 이루기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단지 그것이 시대적인 요구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평화 이루기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이며 교회됨의 강력한 표지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것은 교회 안에서마저 평화가 슬로건에 불과한 현실이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평화보다는 오히려 호전적인 삶의 태도와 더욱 가깝게 연상될 정도이다. 이것은 교회가 평화 이루기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기 때문에 평화는 오늘 한국교회와 신앙인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 되어야 한다. 교회 안팎에 만연한 갈등, 즉 반평화적 현실은 신앙인 됨과 교회됨의 정체성 위기를 뜻하며 우리 개혁의 과제와 방향을 제시해준다.
갈등 사회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한 교회 공동체의 자기 인식과 실천이야말로 곧 신앙인 됨의 정체성이자 성숙의 과정이며, 교회다운 교회됨으로의 여정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평화를 이루어가는 삶뿐만 아니라 평화 공동체로서의 교회 개혁과 한국 사회의 평화를 이루어가는 일에 온 교회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개혁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임성빈 장로회신학대 총장
[바이블시론-임성빈] 갈등사회와 교회
입력 2017-02-16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