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에 다니는 조카 덕분에 어린이 뮤지컬을 하나 봤다. 제법 규모가 큰 극장에 가서 표를 받아 보니 ‘36개월 이상 관람가’ 등급. 음, 나도 관람을 허가받은 거로군. 꽃분홍색으로 반짝이는 야광봉까지 챙겨 들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단체관람 온 유치원 꼬맹이들의 삐악삐악 떠드는 소리와 들뜬 얼굴들. 그 자체가 이미 뮤지컬이다.
막이 오른 뒤 무대에서는 쉴 새 없이 노래와 춤이 흘렀다. 내용은 초등학생 중학생 개성 다른 아이들 셋이 가상현실 아이돌 경연대회에서 우승한다는 것. 너 자신을 찾아라, 자신감을 갖고 용기를 내라, 소망을 향해 노력해라 등의 메시지가 있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마녀 교장에게 뜻밖의 상처가 있는데 오해에서 비롯된 그 상처가 씻김을 받는다는 양념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의 성취와 화합으로 (당연히!) 이야기는 끝난다. 긴 공연 시간에도 아이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이미 익숙한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제법 집중한다. 야광봉을 흔들며 (나도 열심히 따라 했다) 노래도 합창을 한다(이건 못 따라 했다). 무엇보다도 쉴 새 없이 바뀌는 화려한 의상에 열광한다. 배우들, 노래와 춤도 힘든데 옷 갈아입느라고 더 정신없겠다, 싶다.
이 공연에 대한 어른으로서의 즉각적 반응은, 아이돌 문화가 아이들 일상을 너무 장악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였다. 그러다 얼른 반성. 이게 예의 ‘사’자 미래를 향해 매진하는 일상과 크게 다른 게 아니다. 과정 험난하고, 현재는 저당 잡히고, 성공 확률 낮은 건 매한가지다. 인공지능 로봇이 ‘사’자 직업을 거의 대체할 수 있다는 미래에 인간에게만 가능한 창의와 예술 쪽의 일은 오히려 이쪽이 아닐까. 이런 문화가 일상과 긍정적인 조화를 이루며 안정적인 삶의 방편이 되는 길을 마련해주는 게 어른들이 할 일이 아닐까.
함께 본 어른이,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니야 하고 중얼거린다. 나는, 춤과 노래가 제일 쉬운 애들도 있어 하고 중얼거린다. 그런 애들이 나설 자리가 많아지는 게 참 다행이다. 뮤지컬 열심히 보러 다녀야겠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전진이 기자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춤이 제일 쉬웠어요
입력 2017-02-16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