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시신 부검이 실시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병원(HKL) 주변은 15일 하루 종일 수사기관과 정보기관, 각국 외교관들이 탄 차량이 들락거리는 등 긴박한 모습이었다. 병원 주변에는 중무장한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특히 부검을 참관하기 위해 온 듯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도 병원에서 목격됐다.
김정남 시신은 당초 HKL에서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푸트라자야 병원에 안치돼 있었다. 하지만 시신은 이날 오전 HKL로 옮겨졌다. 현지를 관할하는 셀랑고르주 경찰서장 다투크 사마 마트는 취재진에 “HKL의 부검 관련 시설이 푸트라자야 병원보다 좋아서 시신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시신 이송은 삼엄한 경비 속에 이뤄졌다. 오전 9시쯤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경찰이 탄 경찰차 서너 대가 시신을 실은 병원 차량을 호위하며 HKL로 향했다. 푸트라자야 병원에 몰려 있던 내외신 취재진 100여명도 HKL로 자리를 옮겨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HKL 영안실 앞이 기자들로 가득 찼다. 경비원들이 대거 배치돼 취재진의 영안실 출입을 막았다.
이날 오전 외교관 번호판이 달린 북한대사관 승용차 여러 대가 병원에 도착했고 여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영안실로 들어가는 것이 목격됐다. 오후에는 강 대사의 승용차가 병원에 왔다. 부검을 확인하고 조속한 시신 인도를 요청하러 온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밖에 있던 북한대사관 직원은 국민일보 기자를 비롯한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북한은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극물 공격을 받은 김정남이 푸트라자야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을 거둔 이후 외교관을 병원으로 보내 현지 경찰에게 시신 인도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외교 경로를 통한 공식 타진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인도를 거부했다.
현지에서 시신이 이송되기 전 북한이 인도를 요청한 것을 두고 그 배경이 무엇인지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자국 고위 인사가 피살된 것을 측은하게 여겨 시신 수습에 나선 것이라는 추정도 있었고, 살해 과정 전반을 감추기 위해 부검 전에 서둘러 수습하려 한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의 말레이시아 내 동선을 파악하면서 그가 접촉했던 사람도 조사하고 있다. 현지 당국은 북한과의 외교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어서 극도의 보안 속에 수사하는 중이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관할하는 세팡시 경찰서는 취재진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수사 진척 상황에 대해서도 철저히 함구하는 모습이었다.
피살 현장인 쿠알라룸푸르 공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서 온 외신 기자들이 카메라·사진 촬영을 시도하자 공항경찰이 제지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김정남이 피습 직후 도움을 요청했던 안내데스크 직원들도 입을 닫았다.
쿠알라룸푸르=신훈 특파원 zorba@kmib.co.kr
[르포] 말레이시아 “부검 먼저”… 北 시신 인도 요청 거부
입력 2017-02-16 00:01 수정 2017-02-16 0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