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중순, 서울 종로구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실 전화에 벨이 울렸다.
“어린 딸이 두개골에 희소병을 앓고 있어요.”
A씨(27)는 딸의 수술을 앞뒀지만 건강보험료를 못 내고 있었다. 그는 “월급이 일정치 않아 밀린 월세와 신용카드 빚도 다 못 냈다”며 “일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는 데다 아내도 딸을 돌보느라 일할 형편이 안 된다”고 호소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체납된 건보료 분할납부 1회분을 지원해 수술은 받을 수 있었다. A씨는 체납액을 면제받지는 못해 부담은 여전히 남아있다.
임신 8개월 미혼모였던 신모(39·여)씨가 이곳으로 전화를 건 것도 같은 달이었다. 건보료 체납자는 고운맘카드를 발급받지 못해 출산비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분납 1회분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하다 실패해 파산이 진행 중”이라며 “체납이 누적되고 소득이 없어 갚을 길이 없다”고 호소했다. 통장에는 180만원이 있었는데 법적 생계비 150만원 외에 모두 압류된 상태였다.
아름다운재단과 건강세상네트워크는 15일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 지원사업’에 지난 1년간 온라인과 전화로 900건 넘는 요청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어린이에게 부과된 건보료, 청년의 취업 및 생계에 악순환을 가중하는 연대 체납, 빈곤층 생계에 부담을 가중하는 내용이었다.
두 단체는 내년 1월까지 1억3000여만원을 더 들여 생계형 체납자를 계속 지원할 계획이다. 체납 보험료 분납액 1회분과 건보료 1개월 치를 지원한다. 올해부터는 건보료 체납자 중 진료가 필요한 이들의 요청을 우선 접수한다. 미성년자와 65세 이상 노인, 한부모 가정, 임산부, 차상위계층이 대상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가 발표한 6개월 이상 건보료 체납자 규모는 지난해 6월 기준 최소 134만7190가구에 체납액은 2조원이 넘는다. 이 중 한 달 보험료가 5만원 미만인 저소득층은 90만8145가구(67.4%)다.
건강보험공단은 생계형 체납자나 미성년자 등은 재정운영위원회에서 심사해 밀린 보험료를 면해주는 결손처분을 내리고 있다. 지난해 8만3496건을 결손처분해 1029억9300만원을 지원했다. 미성년자 지원이 2만2204건 11억2900만원이었다.
시민단체와 야당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30여명의 재정운영위에서 분기별로 전체 사례를 심의하는 데 한계가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정숙 활동가는 “시민위원회를 설치해 체납문제 등 건보 가입자의 권익을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도 관련 법안 발의를 검토 중이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건보료 못내 아파도 병원 못가는 사람들
입력 2017-02-16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