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반체제인사 입막기… 현대정치 독살 잔혹사

입력 2017-02-16 05:02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독살되면서 ‘독을 이용한 은밀한 살인’의 잔혹한 역사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번 사건도 첩보영화에나 나올 만한 일이지만 실제로 독살은 정적을 제거하는 ‘효과적이고 조용한’ 암살 수단으로 봉건 왕조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사에서도 숱하게 등장한다.

AFP통신은 15일 가장 대표적인 독살 사례로 불가리아 반체제 작가 게오르기 마르코프가 ‘독 우산’에 암살된 사건을 꼽았다. 영국 런던에 망명 중이던 마르코프는 1978년 인체에 치명적 독극물인 리신이 묻은 우산에 찔려 사망했다. 누군가 뒤에서 실수를 가장해 우산으로 찔렀고, 이후 미안하다고 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나흘 뒤 마르코프는 숨졌다. 부검 결과 그의 몸에선 우산을 찌를 때 삽입된 지름 1.7㎜ 크기의 캡슐이 발견됐고 그 안에서 리신 성분이 검출됐다. 마르코프 독살은 2005년 기밀 해제된 불가리아 공산당 문건을 통해 불가리아 비밀경찰 소행으로 드러났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도 위협 인물 제거에 종종 독을 이용했다. 97년 모사드 요원들이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칼리드 알마슈알을 독살하려다 실패한 사건은 널리 알려진 사례다. 알마슈알에게 독극물을 주입하는 데 성공했던 요원들이 붙잡히면서 이스라엘은 그들의 석방과 해독제를 교환했고 혼수상태까지 갔던 알마슈알은 극적으로 살아났다.

2004년 우크라이나에선 진보 성향의 야당 대선후보 빅토르 유셴코가 친러시아계 보수 여당 후보 빅토르 야누코비치에 맞서 출마했다 맹독성 화학물질 다이옥신 테러를 당해 심한 얼굴 변형을 겪었다. 유셴코 지지자들은 러시아가 배후라고 주장했고, 이 사건의 역풍으로 친러 정권은 대선에서 패배했다.

같은 해에는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심한 감기로 프랑스 파리의 군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사망했다. 당시 이스라엘에 의한 독살 의혹이 제기됐지만 프랑스 정부는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부검을 실시하지 않았다. 이후 프랑스 검찰은 2012년부터 아라파트 사망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 아라파트의 소지품에서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210과 납-210을 발견했지만 자연환경에도 존재하는 극소량이었다며 수사를 종결했다. 별도 조사를 한 스위스 로잔대학 방사선연구소는 “폴로늄이 비정상적인 수준”이라고 반박했지만 결론이 뒤바뀌지는 않았다.

2004년엔 또 인도네시아 인권 운동가 무니르 사이드 탈립이 자카르타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여객기에서 독성물질 비소가 든 음식을 먹고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2006년에는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러시아 정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독살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던 그는 지인을 만나 차를 마시고 돌아온 뒤 쓰러져 약 3주 만에 숨졌는데 체내에서 아라파트의 소지품에서도 발견됐던 폴로늄-210이 대량 검출됐다.

2011년 발생한 구카이라이 독살 사건은 치정과 배신을 배경으로 중국 당 지도부의 역학관계와 맞물려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전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는 한때 연인 관계였던 영국인 닐 헤이우드가 사업상 이유로 배신하자 그를 호텔로 유인해 청산가리(시안화칼륨)를 먹여 살해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