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아무 법문(法文)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
한센병을 앓아 ‘나병(한센병의 옛 명칭) 시인’으로 불렸던 고(故) 한하운 시인은 자신의 시 ‘벌’에서 한센병을 ‘어처구니없는 벌’이라고 했다. 흉한 외모 탓에 치료법이 발견되기 전까지 한센병은 천형(天刑)으로 일컬어졌다.
사회의 차가운 편견과 차별에 시달렸던 옛 한센병 환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최종 승소했다. 소송 제기 4년 만에 첫 번째 확정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15일 과거 한센병을 앓았던 강모(81)씨 등 1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씨 등은 1955∼1977년 사이에 전남 고흥군 국립 소록도병원 등에서 격리 치료를 받으며 강제로 임신중절·정관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들은 2007년 구성된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강씨 등은 “국가의 배제·차별로 인해 인간으로서 가질 최소한의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했다”며 소송을 냈다.
1, 2심에 이어 대법원도 “국가가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임신중절 수술 등은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국가는 강씨 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관제거 피해자는 3000만원, 임신중절 피해자는 4000만원을 배상받는다.
강씨 등의 소송을 대리한 한센인권변호단은 선고 직후 “대법원이 국가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배상을 확정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며 “한센인들에 대한 차별과 무지가 해소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강제 낙태·단종 한센인에 대법원 ‘국가배상 책임’ 첫 판결
입력 2017-02-15 21:01 수정 2017-02-15 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