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오너 구속이란 위기상황을 맞은 삼성은 법원 판단과 여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삼성은 중요한 사실관계가 새로 드러나거나 사건의 골격이 달라진 게 없는데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무리하게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고 보고 있다. 법리적인 부분은 충분히 소명할 자신이 있다는 입장이지만 한 차례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삼성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점은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삼성 내부에서는 여론에 떠밀려 오너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적지 않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당초 조의연 부장판사가 영장 기각 사유로 거론한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 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등 핵심 쟁점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보고 있다.
특검이 새롭게 추가한 국외재산도피, 범죄수익은닉 등 혐의에 대해선 사실관계는 그대로인데 혐의만 바꿔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특검은 삼성전자와 코어스포츠 간 용역계약이 허위이고 삼성전자가 말을 소유한 적도 없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독일에 돈을 송금한 것은 국외재산도피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삼성은 “컨설팅 계약 체결은 허위가 아니고, 말도 실제로 삼성전자 소유”라며 반박하고 있다.
또 특검은 코어스포츠와 용역계약, 말 구입·매각 등이 허위이므로 범죄수익은닉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은 “말을 구입해 소유하고 있다가 2016년 8월 매각한 것이므로 특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기존 사실관계에 새로운 혐의를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삼성은 특검이 언론 브리핑을 통해 공개한 30억원 상당의 명마 블라디미르 지원 의혹, 삼성바이오로직스 특혜 상장 의혹 등도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 부인하고 있다.
삼성 안팎에서는 특검이 몸통을 건드리지 못하게 되자 삼성만 겨냥해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는 격양된 반응이 나온다. 그동안 특검은 “삼성 수사와 별개로 대기업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지난 13일에도 “삼성 신병 처리 이후 다른 대기업을 수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14일 이 부회장과 박상진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삼성 외에 다른 대기업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 조사에 실패한 특검이 종료 시한을 앞두고 재벌 총수라도 구속시켜 실적을 내려는 것 아니냐”며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실적이고, 기각되면 법원 책임으로 돌리면 되니까 특검 입장에선 잃을 게 없지 않으냐”고 비판했다.
또 최근 들어 ‘공판 중심주의’가 자리잡으면서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분위기인데 특검이 유독 구속 수사에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도 재계에서 나온다.
삼성은 이날 예정됐던 사장단회의를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부회장 구속영장 재청구 등 현안에 대한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글=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긴장의 삼성 “사실관계 그대로인데 혐의만 바뀌어”
입력 2017-02-15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