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이복동생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명령’(스탠딩 오더)에 의해 피살됐다고 우리 정보 당국이 15일 확인했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긴급간담회에서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김정남에게 가해진 독극물 테러는 지속적으로 암살 기회를 엿보며 준비한 북한 정찰총국 등이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피살 사건의 배후가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김정남이 살해된 동기다. 통상 독재국가에서 고위급 인사가 암살될 때에는 이유가 비교적 명확하다. 사건 이후 자국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마시켜야 하는 만큼 겉으로 내세울 만한 명분이라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암살의 경우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김정남은 김정은을 위협할 만한 북한 내 지지 세력이 없었으며 반체제 움직임도 벌이지 않았다. 국정원은 그가 한국 등에 대한 망명을 시도한 적이 없었으며 북한 주민들은 김정남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고 했다. 오히려 김정남은 한 차례 암살 시도가 있었던 2012년 4월 김정은에게 구명 편지를 보내 “저와 가족에 대한 응징 명령을 취소해 달라”고 호소했다. 체제에 위해를 끼칠 존재가 전혀 아니었던 셈이다.
국정원은 김정남 피살 이유를 ‘김정은의 편집광적 성격’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최고통치자로서 고도로 계산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편집광(편집증)은 대상에게 저의가 숨어 있다고 판단해 끊임없이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망상장애다.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2013년 말 처형됐을 때 국내외 전문가들은 그가 김정은 체제에 위협적인 존재여서 당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는데 지금 보면 틀렸을 가능성이 있다. 숙청된 다수의 군 장성과 고위 관료도 정신장애자의 무고한 희생양이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김정은을 우리가 상대해야 한다. 집권 직후인 5년 전부터 이복형을 제거하라고 지시하고 결국 성공시킨 김정은이다. 국제사회는 물론 혈맹인 중국까지 나서서 제지하는데도 핵과 미사일 도발을 멈추지 않는 데에는 편집광 성향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김정은의 북한’을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당장 김정은이 핵, 미사일로 한국 등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우리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우방과 함께 보다 더 정교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김정남과 그 가족을 보호해온 중국과의 협력도 절실해졌다.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고위급 탈북자들에 대한 신변안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이날 “국내에도 암살자가 잠입해 있다는 첩보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성격상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사설] ‘편집광 김정은’ 더 극악무도한 일 저지를 수 있다
입력 2017-02-15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