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3代 서점, 그 곳에 내려앉은 사람 냄새

입력 2017-02-17 05:02
인구 8만명의 작은 도시인 강원도 속초에 있는 동아서점은 1956년부터 이 지역 독서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이 현재의 동아서점 모습이다. 위쪽 사진 중 왼쪽 사진은 1960년대 후반 고(故) 김종록이 운영한 서점이며, 오른쪽은 아들 김일수가 맡았던 서점으로 86년 당시 동아서점의 모습이 담겼다. 동아서점 페이스북 캡처·알마 제공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각각 장식하는 건 부자(父子)가 주고받은 편지다. 아버지 김일수가 아들 김영건에게, 아들 김영건이 아버지 김일수에게 띄운 편지에는 서로를 향한 살뜰한 사랑의 감정이 묻어난다. 이들 부자는 강원도 속초에서 대(代)를 이어 ‘동아서점’이라는 책방을 운영하는 서점 주인들이다.

‘아들아. 사십 년 동안 서점 일을 했지만, 항상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뭔가 부자연스럽게 생각되어 왔었다. 사명감 같은 게 있어서 한 게 아니라 그저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오래 하게 되었구나 생각했던 나였다. …아들아. 그동안 여러 가지 부족했거나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 늦은 이제부터라도 잘해보고 싶고, 무엇보다도 네게 도움이 되고 싶구나.’

‘아버지. 서점을 새로 가꾼 후에 당신과 함께 일하며, 때로는 깨끗하고 반짝이는 서점 안에 서 있을 당신을 보면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럴 때마다 저는 당신과 우리 서점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있는 것만 같다고 느꼈습니다. …아버지. 앞으로도 부디 오랫동안 서점에 계셔 주세요. 오래오래 제 곁에 있어 주세요.’

어쩌면 동아서점은 세상에 하고많은 책방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을 둘러싼 이야기는 우리네 서점의 흥망성쇠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아우르고 있다. 동아서점은 김영건의 할아버지 고(故) 김종록이 1956년 개업한 책방으로 언젠가부터 속초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당신에게 말을 건다’는 동아서점 ‘3대 주인장’인 김영건이 썼다. 서울에서 공연기획자로 살던 그는 2014년 8월 어느 날 ‘적잖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서점을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김영건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제안을 받아들이고 만다.

‘속초에서 서점을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내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미래가 유망한 스타트업도 아니고 기발한 아이템 개발도 아닌 ‘서점’과 ‘속초’의 조합이라니!’

서점 운영이라는 게 얼마간 낭만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가 전하는 서점 일은 노동, 그 자체다. 책을 진열하고, 팔리지 않은 책을 교체하고, 교체한 책을 반품하고, 흐트러진 서가를 정비하고, 도서관에 납품할 책을 정리하고, 어떤 신간을 주문할까 고민하고….

2015년 1월 서점 인테리어를 새롭게 단장한 뒤 서가를 어떻게 분류할지 고민한 과정도 흥미롭다. 저자는 역사 과학 철학을 아우르는 책들을 어떤 서가에 진열해야할지 몰라 망연했다고 한다. 제목만 보고 그 유명한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취미-반려용품’에 꽂았다가 단골손님에게 포착된 적도 있었다. 그는 이런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면서 서점 주인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한국의 서가 분류법이라는 것이 기존의 ‘문과’ ‘이과’의 분리된 학문 체계에서 발전한 탓에 ‘문·리’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학문의 흐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온라인 서점과 대형 서점의 틈바구니에서 악전고투하는 중소형 서점의 현실도 확인할 수 있다. 단골손님들 이야기, 서점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 지난해 백년가약을 맺은 아내와의 러브 스토리도 담겼다. ‘당신에게 말을 건다’는 쿰쿰하면서도 향긋한 서점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금주의 신간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