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도영] 대선 이후가 더 걱정인 이유

입력 2017-02-15 17:28

5월일 수도, 12월일 수도 있다. 대선 투표 결과가 확실해진 밤 11시쯤 19대 대통령 당선인이 여의도와 광화문에 등장한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이름을 연호하며 축제가 열린다. 단상에 올라선 당선인은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과 국민 통합을 강조할 것이며, 그날 밤 기쁨과 두려움이 뒤섞인 가운데 잠을 설칠 것이다.

감격은 오래지 않아 끝난다. 다음 날 오전 첫 출근한 대통령은 황량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오랫동안 일하지 않았던 청와대는 정상적인 국정운영 시스템이 붕괴된 상태다. 함께 일할 국무총리도 장관도 청와대 참모 진영도 갖춰지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던질 첫 번째 메시지를 골라야 한다. 골칫거리 북한 김정은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주제다. 국내 상황은 더욱 고약하다. 취업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그마저 취직하지 못하는 젊은이, 가계부채 1300조원의 문제는 당장 해답을 요구한다.

국가 예산은 400조원이다. 이 돈으로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들을 마음 놓고 낳아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니 산업구조 개편도 해야 한다. 그동안 이토록 많은 숙제를 풀어낸 대통령은 없었다.

역대 대통령 당선인 모두 엄청난 국민적 기대를 받았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이었고, 박근혜 대통령도 그랬다. 19대 대통령 당선인도 그럴 것이다. 아마도 가장 많은 기대를 받고 출발하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촛불과 대통령의 국회 탄핵소추를 이끌었던 국민의 분노는 정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이러한 국민의 열망은 차기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으로 나타날 것이고, 충족되지 못한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뀔 것이다.

이번 대선은 이전 대선과 조금 다른 특징이 있다. 과거 유력 대선 주자들은 국민을 이끌어 가는 힘이 있었다. 군인 출신 대통령 이후 당선됐던 직선 대통령들은 나름의 특출한 정치적 업적과 삶의 이력을 지녔다. 업적과 자신만의 스토리로 국민을 감동시켰고, 그 감동과 메시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19대 대선 주자들의 정치적 업적과 삶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조금씩 부족함이 느껴진다. 야권의 선두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안희정 충남지사는 아직 노무현 후보의 감동과 희망을 넘어서지 못했고, 그렇다고 호남과 중도층을 근거로 삼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김대중 후보에 비견하는 것도 결례인 듯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를 이명박·박근혜 후보에 견주는 것도 무리다.

이번 대선은 후보 주도의 대선이 아니라 국민 주도의 대선이다. 국민이 앞서가고, 후보들이 따라가는 상황이다. 문제는 성적 기대치는 높고 차분하게 문제를 풀 여건도 되지 않는데 수험생들 실력은 이전만 못하다는 점이다.

결국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 안희정 지사의 행보가 주목받는 것은 안 지사 개인에 대한 지지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정치권이 싸우지 말고 문제를 함께 풀어보라는 국민의 메시지로 해석하는 게 옳다. 냉정하게 말하면 안 지사는 아직 본격적인 검증 무대에 서지도 않았다. 게다가 연정과 협치가 안 지사만의 트레이드마크도 아니다. 과거 DJP 연합이 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도 있었다.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남경필 지사의 협치도 있다. 누가 당선되든 차기 대통령의 가장 큰 숙제는 연정과 협치, 상대방에 대한 인정일 것이다. 이복형을 암살하는 김정은과도 대화를 고민할 터인데, 우리 사회에서 대화하지 못할 상대는 없다. 남도영 정치부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