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의 유착 의혹이 불거진 마이클 플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3일(현지시간) 불명예 퇴진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위기에 직면했다. 트럼프는 플린의 사직서를 즉각 수리하며 국정 수습에 나섰지만 안보 혼란은 불가피한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플린은 지난해 12월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대사와 수차례 문자와 전화를 이용해 접촉하면서 버락 오바마 당시 행정부의 대러 제재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민간인 신분이던 플린이 정부 승인 없이 외교 사안에 관여했다면 ‘로건법(Logan Act)’ 위반에 해당한다. 또한 두 사람의 대화는 정권인수위원회 차원에서 오갈 수 있는 통상적 범위를 넘어섰다는 게 중론이다. 그간 플린은 “외국 장관, 대사들과 통화를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원활한 정권 이양을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접촉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플린은 결국 사임을 표명했다. WSJ는 정부 조사 결과 두 사람이 지난해 대선 최대 이슈였던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과 미 대선 개입 의혹 등 민감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플린은 키슬랴크과 단 한 차례 통화를 했고 당시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의 대화를 준비했다고 밝혔지만 사정 당국은 두 사람 사이에 한 번 이상의 전화 통화가 오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 플린이 2015년 크렘린이 후원한 러시아 언론사 ‘러시아투데이’ 행사에 참석해 푸틴과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해명의 진정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트럼프는 국가안보보좌관 대행으로 조지프 키스 켈로그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총장을 즉각 임명했다. 플린의 비서실장 역할을 맡아 온 켈로그는 지난해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의 국방 참모로 활약했고 정권인수위원회가 꾸려진 후에는 국방 분과에서 일했다. 육군에서 30여년간 복무했고 베트남전에 두 차례 참전했다. 이라크전쟁 이후 2003∼2004년엔 이라크 연합군 임시행정처(CPA)를 이끌었다. 은퇴한 뒤 IT 기업 오라클에서 안보 고문 역할을 했다.
차기 국가안보보좌관에는 켈로그와 함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로버트 하워드 전 합동참모본부 부의장,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스티븐 해들리 등이 거론된다. 퍼트레이어스가 14일 트럼프와 회동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지만 2012년 자신의 자서전을 집필하던 작가 폴라 브로드웰과의 불륜 스캔들로 CIA 국장직에서 물러난 약점이 있다. 국가안보보좌관은 상원 비준 없이 대통령이 임명한다.
백악관 비서실장과 대변인 교체도 임박했다는 예측도 나왔다. 반(反)이민 행정명령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한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은 능력 부족이라는 거센 질타에 직면했다. 후임으론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물망에 오른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정권인수위원장까지 맡았지만 트럼프와 사이가 틀어져 부위원장으로 강등된 뒤 막후로 사라졌던 인물이다.
트럼프가 숀 스파이서 대변인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얘기도 나왔다. 스파이서가 지난달 첫 정례 브리핑 때 트럼프가 싫어하는 매체인 CNN방송 기자에게 질문 기회를 부여해 공방을 벌인 것과, 최근 브리핑에서 맏딸 이방카를 옹호한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주의 조치를 받았다’고 공개한 것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사 참사’는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 정치 경험이 부족한 엘리트 강성 인사들에 대한 우려는 조각 당시부터 쏟아졌다. 장관 15명 중 윌버 로스 상무장관, 앤드루 푸즈더 노동장관, 릭 페리 에너지장관 내정자 등 6명이 여전히 상원 인준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對러 제재’ 관련 내용 러시아 대사에 전달
입력 2017-02-15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