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6개월을 돌고 돌아 다시 취업준비생이 됐다. 지난해 하반기에 작은 회사만 골라 10곳에 지원했다. 대기업 공채에는 자기소개서조차 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모두 탈락했다. 2013년 8월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박수연(가명·28·여)씨는 “아르바이트보다 낫기만 하면 어디든 좋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앞으로 결혼도 해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밀려온다”며 복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박씨는 2013년 2월 60만원을 내고 초과 학기를 등록했다. 학자금 대출을 3번 받았던 박씨에게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은퇴한 뒤라 교사인 어머니의 외벌이로 네 식구가 먹고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무턱대고 백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홀로 고민하던 박씨는 “학점을 다 채우지 못해 초과 학기를 들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부모님에게 돈을 받았다. 딱히 도움을 청할 교수님이나 조언을 구할 만한 선배도 떠오르지 않았다.
졸업을 유예하고 스펙 쌓기에 들어갔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공무원시험 준비를 결심하고 한 학기 만에 졸업을 결정했다. 유예비용보다 저렴한 인터넷 강의를 듣고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했지만 공무원시험의 문턱은 높았다. 3년을 돌아와 박씨는 다시 취업준비생이 됐다. 박씨는 취업준비생의 기본인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부터 다시 따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많은 대학생이 졸업유예 기간을 취업 준비의 발판으로 삼고 있지만 똑같은 높이로 도약하진 못한다. 전문가들은 이 차이가 부모의 소득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졸업유예자에게 부모의 소득 수준은 경제적 영향에다 심리적 부담까지도 주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경우 짧은 유예기간 동안 빨리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유예를 길게 끌수록 비용과 시간적 부담은 커진다.
반면 고소득층은 부모의 지원이 상대적으로 넉넉하다. 2015년 8월 사립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이모(32)씨가 그랬다. 이씨는 2014년 2학기에 60만원을 내고 한 학기 졸업을 미뤘다. 그 기간 집에서 월 100만원 이상 지원받아 원어민 영어 강의를 들었다. 대기업이 요구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해 한 달에 10만원은 책을 사는데 썼다. 아르바이트나 과외는 하지 않았다. 부모의 월소득이 800만원 정도 되기에 가능했다. 이씨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교 교수는 “고소득층의 경우 부모 소득이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일종의 ‘완충지대’라 할 수 있는 안전판을 갖고 있어 미래에 대한 전망도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며 “미래를 더 확실하게 다지기 위해 졸업을 유예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가 잘살면 미래도 다양한 가능성으로 열린다”며 “한쪽에는 탐색이나 도전 기회가 되고, 다른 한쪽에는 생존을 위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만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졸업유예를 조언해주는 사람도 차이가 있다. ‘대학생 졸업유예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부모 월평균 소득이 150만원 미만인 학생은 졸업을 미룰 때 조언받는 이 가운데 주변 지인(친구와 선배 제외)의 비율이 22.7%로 다른 소득층에 비해 높았다. 월소득 800만원 이상인 고소득층은 교수(21.9%)와 부모(12.5%)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부모의 소득 차이가 자녀의 사회적 자본 격차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신동준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소득층은 부모의 연결망을 활용할 수 있는 반면 저소득층은 부모의 연결망을 동원해서 도움 얻을 부분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이런 부분에도 경제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비슷한 경제·사회·문화적 수준에서는 얘기를 나눠도 확장이 되질 않는다”며 “지금 사회는 젊은이들을 경제적으로 빈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마저 쪼그라들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전진이 안지나 기자
[졸업유예도 빈부격차] ‘금수저’엔 도전의 기회… ‘흙수저’엔 생존의 선택
입력 2017-02-14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