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저금리, 디지털 변신이란 삼각파도를 맞고 있는 은행권이 기존에 없던 수수료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영업 전략을 바꾸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올해 안에 고객이 창구에서 입출금을 할 때도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씨티은행도 다음달 8일부터 1000만원 이하 계좌를 가진 신규 고객에게 월 5000원의 계좌유지 수수료를 매달 받겠다고 고지했다. 이들 은행은 한목소리로 ‘모바일 비대면 채널 강화’를 내세우는데, 모바일 당근책이 아닌 오프라인 벌칙성 수수료를 새로 만드는 방식으로 고객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14일 “인터넷 모바일 비대면 채널 활성화를 위해 창구거래 수수료를 금융당국과 협의 중”이라며 “아직 시행시기 범위 조건 등은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창구거래 수수료라는 명칭 역시 확정된 바가 아니다. 디지털 뱅킹과 자동입출금기(ATM)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창구에 찾아와 직원을 붙잡고 단순 입출금 거래를 하는 고객에게 수수료를 물리는 정책으로 파악된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8일 계좌유지 수수료 제도를 도입한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한 줄 공시했다. 지난해 넉 달 넘게 금융당국과 협의했고,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 개정 사항이어서 시행일인 3월 8일 한 달 전에 고지하게 된 것이다. 씨티은행 측은 “인터넷 모바일 고객은 수수료가 면제되며, 디지털 뱅킹이 어려운 노년층과 어린이도 부과 대상에서 빠진다”고 강조한다.
은행권 수수료 신설 및 인상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2015년 8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은행 가격 결정에 자율성을 주겠다”면서 수수료 인하 지도 및 실태 점검 등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부터다. 당국은 자율화를 주문했는데, 은행들은 릴레이 인상 및 수수료 신설 움직임으로만 가고 있다. 타행과 다른 가격 자율성을 위해 수수료를 내린 곳은 없었다.
계좌유지든 창구거래 명목이든 은행들이 수수료를 새로 만드는 이유는 일정 금액 이하의 계좌 유치가 의미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25%로 내린 이후 시중 부동자금이 요구불예금에 몰리는 등 은행은 손쉽게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14%의 인력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낸 국민은행을 필두로 은행권 구조조정이 병행되며 지점 폐쇄 및 창구 인력 축소가 가속화하고 있다. 고액 자산가를 위한 프라이빗 뱅킹(PB) 서비스가 아니라면 창구 자체를 향후 없애야 할 비용으로 보고 있다.
당장 소비자 불편이 불보 듯하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형구 금융국장은 은행권 수수료 신설 움직임에 대해 “은행 수익에 도움이 안 되고 불필요한 고객을 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없던 수수료를 새로 만들어서 오프라인 징벌로 모바일 비대면 채널을 강화하려는 것도 억지 전략이라고 논평했다. 강 국장은 “외환위기 당시 거대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 산업이 공공성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디지털 변신” 앞세워 오프라인 수수료 만드는 은행
입력 2017-02-1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