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아픔 딛고…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 얻었어요”

입력 2017-02-15 05:04
14일 서울 마포구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희망다미웰니스서울센터에서 열린 소아암 환아 졸업식에서 천진욱 협회 사무총장(뒷줄 가운데)과 센터 직원들이 아이들과 함께 ‘희망의 화분 만들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밸런타인데이인 14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는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희망다미웰니스센터’의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졸업장을 받은 학생은 9명. 모두 소아암을 겪은 어린이다. 졸업생 중 7명은 완치돼 다음달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눈빛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친구들이 졸업장을 받을 때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희망다미웰니스센터의 졸업식은 올해가 네 번째다. 신경모세포종, 림프백혈병, 뇌종양, 골수이성형증 등 다양한 이름의 소아암을 앓았거나 치료의 막바지에 있는 아이들이 오랜 투병생활을 마치고 학교 등 일상에 복귀하도록 돕는 곳이다.

매년 국내에서 1500여명의 백혈병·소아암 환자가 발생한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완치율이 80%에 육박한다. 이처럼 많은 아이들이 사회로 돌아가고 있지만, 사회는 소아암을 경험한 어린이를 이해하는 데 서투르다.

소아암은 치료기간이 평균 3년 안팎이다. 병원 무균실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 면역력이 약해 집이나 병원을 벗어나기 어렵다. 항암치료 등 집중치료 기간에는 학교를 아예 나가지 못한다. 그런 어린이들이 다시 친구들과 어울리고 뛸 수 있도록 돕는 이 센터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현재 4세에서 8세 사이의 소아암 환아 24명이 무료로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최지희(가명·6)양도 센터를 찾기 전 낯을 많이 가렸다. 어머니 김정현(가명·36)씨는 “지희가 면역력이 약해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다보니 사회성이 부족했다”며 센터에 온 뒤로 많이 활발해졌다고 전했다.

이날 졸업식에서 ‘적극참여상’을 받은 허준석(가명·7)군에 대해 서정은 센터 과장은 “놀랍게 변했다”고 말했다. 서 과장은 “1년 전만 해도 준석이는 남들과 눈을 1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사회성이 부족했다”며 장난꾸러기가 된 허군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어린 나이에 투병에 시달리다 보니 언어능력이나 인지능력이 부족해 별도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 신경모세포종을 앓고 있는 박주호(가명·7)군은 언뜻 보기에는 여느 또래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로 청각뿐 아니라 언어능력도 떨어진 상태다. 박군은 1주일에 두 차례 언어치료를 받고 있다. 박군의 어머니 한영지(가명·40)씨는 “센터에서 제공하는 언어치료를 받고 언어능력이 많이 좋아져 친구들과도 더 잘 어울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축사에 학부모 대표로 나선 한씨는 “한때는 분노와 아픔으로 가득했지만 이 센터가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세상으로 나갈 힘과 용기를 주었다”고 말했다. 천진욱 백혈병소아암협회 사무총장은 “아이들이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교를 졸업하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립할 때까지 함께하자”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15일은 세계 소아암의 날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