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4당 원내대표들이 탄핵심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승복하기로 합의했다. 인용되든 기각되든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로 갈린 진영 갈등의 골이 깊어질 테니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다시 촛불이니, 태극기니 하면서 정당이 선동하거나 국론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지 말자는 의미”라고 했다. 대통령 대리인단 서석구 변호사는 14일 헌재 심판정에서 준비해 온 태극기를 펼쳐 들었다. 법률과 논리를 다퉈야 할 자리에서 “우리 편은 들고 일어나라”는 웅변에 가까운 몸짓을 했다. 이런 지경이면 헌재 결정 이후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이 흔한 질문의 답은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지금 탄핵정국에선 박근혜 대통령 편이 돼 있는 듯하다. 적어도 대통령 대리인단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증인과 증거를 무더기로 신청하며 시간을 끄는 건 재판관 수를 줄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촛불집회에 맞선 태극기 시위대가 불어나며 광화문광장의 풍경이 석 달여 만에 달라졌다. 시간은 사람의 생각에 틈을 만들고 망각을 촉진한다. 압도적인 것 같던 흐름에도 시간이 지나면 반작용이 나오게 된다는 걸 우리는 유독 박근혜정부에서 절감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난 시간의 작용과 탄핵정국의 양상은 다르지 않다. 이 정권은 시간에 기대어 ‘내 편’의 결집을 부추기곤 했다.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행태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편이 갈리는 상황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의도를 뛰어넘을 원숙한 대응책을 찾는 것뿐일 테다. 여야 4당 합의는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헌재 결정 승복’은 원래 합의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당연히 승복해야 하는 것이고, 결정 이후 절차도 헌법과 법률에 다 마련돼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이런 행동에 나선 것은 탄핵심판 이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테다. 기왕 공감대를 모았으니 취지를 잘 살리길 기대한다. 구속력을 높이기 위해 헌재 결정 이후 정치·사회적 중심을 잡아줄 ‘4당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하면 좋겠다. 탄핵정국에 고개 든 진영 갈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합리적 선택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진다.
[사설] 분열 부를 진영 갈등… 여야, 탄핵심판 이후 준비해야
입력 2017-02-14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