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광야에 성막을 만든 후 가장 안쪽에 증거궤를 안치하기 위해 방을 하나 만들고 지성소(至聖所)라 불렀습니다(출 26:33). 지성소는 ‘가장 거룩한 장소’ ‘성소 중에 성소’라는 뜻입니다. 세속과 구별되며 하나님의 지엄함과 거룩함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지성소의 체험, 지성소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지성소는 지금도 나와 하나님의 만남이 있는 곳입니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싸워 승리한 엘리야는 큰 시련에 직면합니다.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의 살기등등한 공격이 두려웠던 엘리야는 호렙산 동굴에 숨어 버렸습니다. 이때 동굴은 절망 공포 불안 고독의 장소였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엘리야처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살길이 없어 오직 한 가닥 소망을 갖고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 곧 ‘거룩한 지성소’입니다.
둘째, 지성소는 초인적인 거룩한 체험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숨어 있는 동굴에 나타나셨습니다. 엘리야는 감히 얼굴을 들 수 없어 겉옷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자포자기하고 무능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 흔히 취하는 태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체험하고 그 앞에 엎드리게 되는 곳이 바로 지성소입니다. 이때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으면 우리 삶은 절망의 동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셋째, 지성소는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결단하는 곳입니다. 호렙산 동굴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엘리야로 하여금 거룩한 체험을 하게한 다음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왕상 19:15∼16)라는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사명의 결단이 없으면 참된 신앙적 체험이 아닙니다. 2%가 부족합니다. 2차적 체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호렙산 기슭에서 모세로 하여금 거룩한 체험을 하게 했습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 다음 모세에게 떨어진 명령은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것이 지성소를 통한 참된 신앙체험입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사명을 점점 잃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성소를 잃어버렸을 때와 같은 증세가 보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는 ‘누미노제(Numinose)’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인간이 거룩한 존재 앞에 섰을 때 자신이 얼마나 미약하고 연약한 존재인지 통감하는 감성적·미학적·직관적 체험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거룩한 체험’입니다. 그는 누미노제 체험 안에는 신비하고 매혹적이며 두렵고 떨려오는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참된 누미노제가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교회와 개인들은 이를 영적 각성운동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누미노제 체험이 있는 교회, 지성소의 체험이 있는 신앙인이 돼 엘리야처럼 사명에 불타 사회 전반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내시기 바랍니다.
박종덕 목사 (대전 두란노 그리스도의교회)
[오늘의 설교] 엘리야의 지성소 체험 ‘누미노제’
입력 2017-02-15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