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고민 없이 “나, 그거 잘 알아”라고 종종 말을 하지만 사실 ‘안다’라는 사실이 정말 ‘참’이냐를 검증한다는 것은 어렵다. 대상에 대한 주관적 지식을 얻는 방식이 역사전개에 따라 점증적으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때때로 고태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되는 ‘선험적 지식’ 혹은 맹자가 말하는 ‘선한 본성’이라는 심리적 원형이 있다. 죄 없는 아이를 죽이는 것이 나쁘다는 판단, 부모 자식간의 친밀함 같은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면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 때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태도, 질병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은 시공간이나 종족 차이를 뛰어넘는 공통적 지식이다.
두 번째 지식 습득 단계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상식이다. 열심히 일해 사람답게 사는 것, 위계질서의 조직에 헌신하는 태도 같은 것은 ‘사회화’란 과정과 문화적 공간이 없으면 얻을 수 없다. 세 번째 지식을 얻는 방법은 철학적 사고다. 철학적 사고란 믿으라면 믿는 종교적 믿음과 달리 논리에 근거한 합리적 추론에서 결론을 얻는 것이다. 따지고 반성하고 추론하는 태도다. 네 번째는 관찰, 실험, 통계, 사례에 대한 심층적 연구 등으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학적 사고다.
원시인들의 지식 습득이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에 머물렀다면, 고대 이후 중세는 세 번째 단계로 확대된다. 근대 이후에 들어서서 서양 과학이라는 패러다임이 생긴 것이다. 과학이 발전을 거듭하면 절대적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을 때도 있지만 현대 물리학은 이 또한 완전하지 않다고 밝혔다. 관찰자의 오류, 시공간의 비틀림과 상대성 등을 인지하는 상대성 이론이 그 예다. 과학적 방법론도 잘못된 지식을 완벽하게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지식에 빠지는 사고의 태도에는 무엇이 있을까. 먼저 유사점을 들이대면서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늑대와 호랑이는 밤에 주로 다니고, 개와 사자는 대낮에 주로 활동하니 늑대와 호랑이가 한 속이고, 개와 사자가 한 속이라는 식이다. 두 번째는 논리적이지 않은 결론이다. 아침밥을 먹을 때마다 우연히 눈이 오는 경험을 몇 번 하고는 아침을 먹으면 눈이 온다는 식의 자기중심적, 비인과적 논리다. 세 번째는 일반화이다. 몇 사람의 노인을(혹은 젊은이를) 요즘 만났는데 정말 무식하고 완고하더라, 그러니 요즘 노인(혹은 젊은이)은 다 형편없다는 식이다. 네 번째는 논리적 사고체계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인격을 물고 늘어지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슬쩍 거짓말을 하거나 조작해 사실을 왜곡한 후 일단 우기고 보는 태도이다. 가짜 뉴스같이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거짓에 입각해 서로 공격하는 이들이다.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대상이나 집단이라면 명백한 법리와 증거가 뒷받침하는 잘못들까지도 믿지 않으려 한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해 엄청난 기술 진보를 자랑하지만, 정신세계는 원시시대나 고대에 머물러 있는 부분이 많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그래서 안쓰럽고 동정하고 감싸주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마치 원시인처럼 그 애정 때문에 오류마저 진심으로 진실이라고 믿고 있으니 안타깝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어느 자유국가에도 정도와 종류는 다르지만 특정인이나 집단에 맹목적인 신앙과 충성을 바치면서 잘못된 지식과 신념을 끝까지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원시적이고 자아중심적인 견강부회의 사고방식을 깨닫지 못한다면 지위나 재산과 상관없이 여전히 자기 안의 야만성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에게 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정신과 의사를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청사초롱-이나미] 원시적인 정신세계
입력 2017-02-14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