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웠다. 벨기에 작가 조르주 심농이 창조한 쥘 매그레 경감을 연기하는 ‘미스터 빈’ 로완 앳킨슨을 보는 느낌은. ‘매그레, 덫을 놓다(Maigret Sets a Trap)’. 지난해 영국의 ITV가 방영한 이 드라마는 코미디언 앳킨슨을 ‘핑크 팬더’의 클루조 경감처럼 웃음거리 형사가 아니라 과묵하고 진지한 프랑스의 경찰관으로 기용했다. 얼굴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이 사나이는 그러나 진지하다 못해 때로 우울하고 슬프기까지 한 모습의 매그레를 멋지게 소화해냈다. 매그레가 누군가. 셜록 홈즈니 엘러리 퀸이니 필립 말로 등 영미(英美)계 명탐정들이 판치는 추리소설계의 희귀한 프랑스 명탐정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캐릭터 아닌가.
매그레 경감은 추리소설 쪽에서는 전설이다. 심농이 1931∼1972년에 쓴 장편 75편, 단편 28편의 소설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는 파리 경찰로 중년 사나이다. 그는 홈즈 같은 천재형도 아니고 필립 말로처럼 하드보일드한 터프가이형도 아니다. 평범한 경찰관으로서 대단히 인간적인 탐정이다. 한국의 ‘수사반장’과 흡사하다고 할까.
매그레는 세계의 주요 언어로 번역서들이 나왔다. 영화와 TV로 만들어졌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제작된 매그레 영화(TV물 포함)는 171편이나 된다. 그런 만큼 매그레 역을 연기한 배우도 많다. 그중 프랑스의 국민배우였던 장 가뱅과 영어권 배우로 명우 찰스 로튼, 그리고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덤블도어 교수 역을 했던 마이클 갬본경이 유명하다.
이 대열에 로완 앳킨슨이 끼어든 것이다. 앳킨슨은 ‘미스터 빈’으로 기억되는 코미디 배우다. 커다란 눈과 코, 짙은 눈썹, 빠른 하관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에 슬랩스틱한 몸짓까지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코미디언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으면서도 진지한 정극 연기에 도전한 앳킨슨.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역할, 연기에 도전할지 알 수 없으나 올해 안으로 매그레 TV 시리즈가 3편 더 나올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기대된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109> 미스터 빈, 매그레가 되다
입력 2017-02-14 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