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상숙 <5> 선교 이유 추방됐다가 3주 만에 돌아오는 기적이…

입력 2017-02-15 00:03
말레이시아 기독 청년들이 김상숙 권사 집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이들은 김 권사가 추방됐다 3주 만에 돌아오자 두려움 없는 신앙을 갖게 됐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동안 힘들고 버거울 때도 있었다. 인생의 광풍 ‘유라굴로(행 27:14∼15)’로 인해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광풍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 있으면 괜찮았다.

앞서 밝혔지만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국가로 현지인 대상 전도가 금지된 나라다. 기독교인의 차량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언제든 자동차 유리가 박살날 수 있는 나라, 신변 안전을 위해서는 십자가 목걸이를 하지 않는 편이 좋은 나라, 훤히 보이는 곳에 성경을 놓아둬서는 안 되는 나라였다.

1995년 11월, 말레이시아에 도착해 4개월 지났을 무렵이다. 나는 종종 한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원주민이 살고 있는 정글 지역에 갔다. 그곳에서 매주 주일학교를 열었다. 그림을 펼쳐 들고 예수님 이야기와 찬양을 가르치면 귀를 기울이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그렇게 예쁠 수 없었다.

어느 날, 순서를 마치고 막 간식을 나눠주던 참이었다.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요란하게 달려오더니 우리 앞에 멈췄다. 종교경찰이었다. 매주 이곳을 찾는 외국인을 수상하게 여겨 누군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경찰은 우리에게 “어떤 기관에 속해 있느냐” “스폰서가 누구냐” 하며 다그쳤다. 그는 우리의 차량과 소지품도 조사했다. 증거물을 찾지 못하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원주민들이 사는 곳은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위기는 바로 찾아왔다. 다른 마을 아이들이 선교사의 차에 올라타는 장면을 경찰이 목격한 것이다. 경찰은 차를 돌려 추적했고 결국 선교사의 신분증이 한인 교회 소속으로 돼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우리 일행 전체를 재조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 일로 며칠 뒤 이민국 사람들이 교회로 들이닥쳤고 당시 선교사들은 강제 출국 조치를 당했다. 하지만 외국은행 직원의 부인으로 와있던 나는 제외됐다.

그렇게 2년여 시간이 흘러간 어느 날, 인도네시아 근로자들과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공용비자 기간이 만기가 돼 연장을 신청했는데 가족 중 나 혼자만 연장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2년 전 그 사건으로 말레이시아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던 것이다.

결국 나는 한 달 안에 출국하라는 명령서만 받게 됐다.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다. 남편은 애써 위로했다. “며칠 친정에 간다고 생각해요. 너무 걱정 말아요.”

하지만 남편의 다짐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종교문제에 관한 한, 예외가 없었다. 나는 그날 밤 운전을 하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정말 주님을 섬기기 원하는가.’ 이 질문 앞에 서자 갑자기 찬송이 나왔다. 그러면서 확신이 솟았다. ‘그래, 아직 덜 끝낸 성경공부 교재 번역이 남아 있잖아!’ 이후 나는 현지 교회 송별회에서 “3주 만에 돌아올 것”이라 선포했다. 그저 하나님께서 다시 불러 주시리란 믿음 하나였다.

그리고 정확히 3주째 되는 날, 말레이시아 출입국소장은 내 이름을 블랙리스트에서 제외했다. 대통령 비서실장도 해결할 수 없다던 비자가 재발급됐다. 신비한 일이었다. 말레이시아로 돌아오자 현지 교회 신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무슬림보다 한 수 위구나’ 하고 생각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