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스페셜/정치탐구] 간판 바꾸면 선거 때 먹힌다고? 54년간 195개 ‘출몰’

입력 2017-02-15 05:01
한국 정치사에서 당명 교체는 주로 선거용 이합집산의 결과였다. ‘호박에 줄 긋기’라는 비난을 듣고도 정당이 위기 때마다 간판을 바꿔 달았던 것은 당명 교체 이후 선거에서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6번의 대선과 8번의 총선에서 여야는 새 이름과 로고로 단장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그렇게 해서 이긴 전례가 적지 않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4일 “과거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할 때 당명부터 개정한다”며 “우리나라에서 유독 당명 교체가 잦은 것은 선거에서 효과가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196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창설 이후 등록된 정당은 195개(자유한국당 포함)에 달한다.



與, 과거 지우기

보수정당은 비교적 장수했다. 자유당에서부터 최근 자유한국당에 이르기까지 60여년간 7번 이름이 바뀌었다. 물론 이는 민주화 이전 독재 정권의 장기 집권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민주공화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기와, 민주정의당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자유한국당이 뿌리로 삼는 민주자유당 시절부터 치면 27년간 4번 당명이 교체된 셈이다.

민정당은 1987년 6월항쟁으로 창당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해 대선에선 야권 후보 분열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돼 간신히 집권여당의 명맥은 유지했다. 그러나 이듬해 치러진 13대 총선에선 125석을 얻는 데 그쳤다. 야3당을 합하면 164석으로 헌정 사상 첫 ‘여소야대’가 펼쳐졌다. 민정당은 이 판을 뒤집기 위해 김영삼(YS) 총재가 있던 통일민주당, 김종필(JP) 총재가 이끌던 신민주공화당과 손을 잡았다. ‘3당 합당’이었다. 이렇게 민정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1990년 2월 민주자유당(민자당)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거대 여당이 된 민자당은 1992년 총선에서 과반에 가까운 149석을 얻었고, 그해 대선에선 YS를 후보로 내세워 집권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민자당 내부에서 분열이 싹텄다. JP 대표 체제에 YS계가 불만을 드러내면서다. 결국 JP는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하고, 민자당은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면서 각자 새출발했다.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꾼 데는 총선을 앞두고 구속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영향이 컸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거액 수뢰 혐의로, 전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 군사반란 주도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신한국당은 두 달 후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139석을 얻어 원내 1당이 됐다.

신한국당은 당명을 바꾼 지 2년도 안 돼 다시 한나라당으로 간판을 바꾸는 모험을 했다. 1997년 12월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이회창 총재 아들의 병역 비리와 IMF 외환위기로 민심이 급격히 돌아서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명 교체에도 선거 결과는 패배였다. 한나라당은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연달아 져 10년 야당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2012년 2월 ‘박근혜 비대위’ 시절 새누리당으로 옷을 갈아입기 전까지 14년3개월간 명맥을 유지했다. 1987년 체제 이후로는 최장수 당명이다.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 때 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원내 과반을 점한 집권여당이 됐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맞아 보수정당 역사상 첫 분당 사태를 겪었다. 새누리당도 결국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고쳤다.

野, 분열과 통합의 역사

야권에선 정치적 이념을 좇아 분당·탈당했다가 다시 합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명 개정은 세력 재편을 위한 포장이었다. 1955년 9월 민주당 창당 이후 20번 넘게 이름이 바뀌는 와중에도 ‘민주’란 단어는 놓지 않았다. 당명끼리 연결성이 별로 없는 보수정당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야권은 신민주연합당(신민당)으로 이름을 바꾼 평민당과, 3당 합당에 반대해 통일민주당에 잔류한 일명 ‘꼬마민주당’을 중심으로 민주당(1991년 9월)이 만들어졌다. DJ는 1992년 대선에서 YS에게 패배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가 2년7개월 만에 복귀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때가 1995년 9월이다. 기존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대거 국민회의로 둥지를 옮겼다. 세가 불은 국민회의는 1997년 대선에서 DJ를 후보로 내세워 헌정 사상 첫 수평적인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DJ 집권 후 국민회의는 시민사회세력을 흡수해 새천년민주당으로 확대 개편됐다. 새천년민주당은 당명 개정 후 석 달 만에 치러진 16대 총선에선 한나라당에 패했지만 2002년 대선 때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여당이 된 새천년민주당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갈라졌다. 이는 민주당계 정당 분열의 신호탄으로 꼽힌다.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운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하는 깜짝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야권에선 탈당과 분당, 합당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2007년 대선 직전 열린우리당은 탈당 사태를 맞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재편됐다가, 다시 새천년민주당과 합당해 통합민주당(2008년 2월)이 됐다. 이후 통합민주당은 2011년 12월 문재인 전 대표와 시민사회세력을 받아들여 다시 민주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이듬해 치러진 총선과 대선에서 연이어 패하는 시련을 겪었다. 이때 반대편에서 새누리당 총선을 진두지휘하고 대선 후보로 선출된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민주통합당은 대선 패배 후 비대위 체제로 들어갔다. 서울 영등포에 있던 당사를 여의도로 이전하고 당색을 파란색으로 바꾸는 대대적인 쇄신을 벌였다. 당명은 돌고 돌아 민주당이 됐다.

이후 민주당은 안철수 전 대표를 주축으로 한 새정치연합과 통합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당명을 바꿨다. 새정치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20대 총선 직전인 2015년 12월 안 전 대표와 비주류의 탈당으로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됐다. 안 전 대표는 총선 두 달 전 국민의당을 창당해 38석을 확보하며 양당 체제를 흔들었다. 20년 만에 원내 3당 체제가 재연된 것이다.

정당정치 후진성 반영

2년에 한 번꼴로 치러지는 전국 선거 때마다 새로운 정당이 생겼다 사라지는가 하면 권력 교체기에 당명도 덩달아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내용을 바꾸기보다 급한 대로 외관을 뜯어고쳐 세력을 연장해 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가상준 교수는 “당명이 워낙 자주 바뀌다 보니 받아들이는 국민도 ‘얼마 못 가 또 바뀌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지적했다.

당명 교체를 쇄신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가 불안정하고 정당정치가 제대로 안 돼 정당 수명이 짧은 것”이라며 “그래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원동력이나 쇄신의 계기로 평가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글=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