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 안치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 등 대중가요 노랫말로도 사랑받는 정호승(67) 시인이 12번째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창비)를 냈다. “격정에 휘둘리거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관조적 차분함, 절제와 균형의 고전적 감각이 어우러진 서정적 아름다움”(문학평론가 염무웅)이 대중적 인기의 비결이다.
“30대 40대 50대 등 몇 차례에 걸쳐 길면 7년간이나 시를 멀리한 적이 있지요. 직장 생활 하느라 바빠서, 한때는 소설 써보겠다고….”
1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만난 정 시인은 자신을 “부지런한 시인은 아니었다”고 규정하면서 “사물에 대한 생각이 가장 왕성하던 시기에 시를 놓아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때마다 시한테 버림 받을까봐 돌아왔다”며 웃었다.
그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점점 부족해지는 나이가 되지 않았나. 이제는 오로지 시만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등단 40년 기념 시집 ‘여행’(창비, 2013) 이후 4년 만에 나온 이번 시집에는 나이듦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 담백한 언어로 형상화되어 있다.
‘살아 있을 때 단 한번이라도/ 남을 위해 누룩이 되어본 적 있느냐고’(‘누룩’ 일부)
‘저 봄날의 애벌레를 보라/ 자신을 공손히 새들의 부리에/ 온몸을 구부리며 바치지 않느냐’(‘헌신’ 일부)
‘용서’ ‘무소유’ 등 잎을 버리는 겨울나무의 자세가 시의 정서를 지배한다. 그런 그에게도 꺼지지 않는 뜨거움, 결기가 드러날 때가 있다. 희망을 말할 때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는 반어법에는 고통과 절망과 함께 굴러가고자 하는 생의 의지가 있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일부)
그는 시인이야말로 인간의 삶과 고통을 위로해줘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위로의 언어가 바로 독자의 공감을 얻는 힘이다. 시인은 시집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시가 소비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인터넷에는 90% 이상이 원문이 파괴되어 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내 시로 둔갑돼 있는 걸 보기도 했다. 행갈이, 연의 구분, 제목 등이 대부분 틀리더라”면서 “21세기에 아직도 시를 사랑하는 독자가 있다면 시집을 사서 시를 읽어 달라. 원문을 통해서 읽지 않으면 시가 주는 진정한 신비를 만날 수 없다”고 주문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인터뷰] 정호승 시인 “살아갈 날이 부족해지는 나이… 오로지 詩만 생각하며 가겠다”
입력 2017-02-14 17:11